이태원 사고의 책임 대상이 모호한 상황에서 경찰이 112신고내역을 공개하며 미흡한 대처라며 사과하자,
112신고에 ‘압사 징후’가 있었지만 경찰이 흘려들었다며 경찰의 보고시스템, 대처시스템, 지휘관의 행적 등을 연일 지적하고 있습니다.
서울시는 2016년도에 압사를 신종 도시 재난으로 경고하였고, 2020년에 재차 관심을 강조하여 왔고,
실제 우리 정부는 이 사고로 이태원지역을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하였고, 국민들 또한 그간 압사사고와 마찬가지로 이번 사고를 재난이라 하고 있습니다.
경찰이 국민에 대한 무한책임을 가진다고 하더라도 ‘압사’ 사고는 범죄가 아닌 ‘재난’이기 때문에,
이번 사건은 경찰의 112신고 대응이 아니라 ‘재난 징후가 발견된 이후 재난관리시스템이 작동되었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긴급 범죄신고는 112로, 재난은 119로 신고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사건에서는 112에 압사 즉 재난의 징후가 신고되었습니다.
즉, 재난신고가 범죄신고 채널에 접수된 것입니다.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재난안전법) 19조에서는 누구든지 재난의 발생이나 재난이 발생할 징후를 발견하였을 때에는 즉시 그 사실을 시장, 군수, 구청장, 긴급구조기관, 그 밖의 관계 행정기관에 신고하여야 하고,
재난신고를 받은 지자체장 등은 관할 긴급구조기관(소방)에게, 긴급구조기관의 장은 소재지 관할 지자체장 및 재난관리주관기관의 장에게 통보하여 응급대처방안을 마련할 수 있도록 조치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동법 37조이하를 보면, 지자체장 등은 경고의 발령 또는 전달이나, 피난의 권고 또는 지시 등의 응급조치를 하여야 하고, 위기경보의 발령, 동원명령, 대피명령, 위험구역 설정, 강제대피조치, 통행제한, 응원 등의 조치를 할 수 있고, 경찰 등은 지자체장의 요청을 받는 경우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응하여야 한다고도 규정하고 있습니다.
이태원 사고의 경우, 112신고를 통해 압사 재난의 징후가 접수되었고, 공동대응을 통해 소방에 통보하였지만. 소방은 부상자가 없어 출동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기관 끼리 책임 떠넘기기로 비춰질까 조심스럽지만) 소방은 재난 신고로 인식하지 못한 것으로 보이고 재난안전법의 규정대로 지자체장에 통보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한, 지자체는 언제 사고의 징후를 인지했는지도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언론에서는 경찰이 사전에 안전관리 인원을 투입하지 않았고, 112신고 접수 후에도 통제인원을 투입하지 않았다고 비난하지만,
재난안전법에서는 재난관리시스템 작동으로 재난을 대처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라는 가정법의 적용은 현실을 더욱 가슴아프게 하지만, 정말 만약 10. 29. 재난관리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었다면, 즉, 공동대응을 받은 긴급구조기관에서 재난 징후로 인식했다면,
또 그래서 지자체에 통보하여 재난 문자 전송, 위험지역 설정, 대피명령, 통행제한 요청 등 응급대처가 되었다면, 이러한 불행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사회적 논의는 일반적인 신고가 접수처에서 재난 징후로 인식되었는지, 재난관리책임기관은 응급대처를 했는지 등의 재난관리시스템 작동 여부로 이어져 나가야 합니다.
재난안전법상 경찰의 법적지위는 긴급구조지원기관입니다.
이러한 법적지위에 따라 구조 인원, 차량이 최우선으로 구조 활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출입 통제, 교통 통제, 시민 및 주변 안전, 분실물 교환소 운영 등 현장 통제활동을 전개하는 것이 주요 임무입니다.
경찰관직무집행법상 위험방지를 위한 즉시강제(5조), 출입(7조) 등의 권한 또한 이러한 재난 대응 지원임무를 수행하면서 행사할 수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따라서 경찰은 재난신고를 인식할 수 있는 역량을 제고하고, 재난 발생 시 구조활동 보다는 현장통제를 철저히 함으로써 지원기관의 역할에 집중해야 합니다. 경찰이 만능도 아니고 구조활동에 대해서는 전문성도 부족하니까요
하루에도 몇 번 씩 ‘나라면 어떻게 할 수 있었을까’를 고민해 보지만,
그럴 때마다
‘통행불편 처리하다 성추행범 출동 못한 경찰’
‘거리에는 마약범 활개치는데 통행관리만’
‘통행 관리하다 집회시위 관리에 구멍’처럼
평행세계 속의 또 다른 결과론적 비난들이 머릿속을 어지럽게 합니다.
이번 사고에서 경찰의 경비인력 배치 판단 미흡과 사후 보고체계에 문제가 있었던 점은 분명 원인 규명이 필요하고 조속히 개선해야 하지만,
모든 것을 경찰 탓으로만 몰아 경찰에게 책임을 묻고 끝내버린다면 이와 같은 사고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됩니다.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너무나 갑자기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울컥 눈물이 나오기도 하고,
충격적인 상황에서 고군분투 했음에도 갑자기 마녀가 되어버린 용산경찰서 직원들을 생각하면 한없는 우울감에 빠집니다.
돌아가신 분들을 생각해서라도 부디 정책을 결정하시는 분들이 문제의 핵심을 제대로 바라보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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