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4·3 사건은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남로당의 지휘를 받는 빨치산 조직의 진압 과정에서 제주인들이 희생당한 사건을 말한다. 2019년 12월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명예회복위원회가 결정한 제주 4.3 사건 민간인 희생자 수는 14,442명이다(진압군에 의한 희생자 7,624명, 무장대에 의한 희생자 1,528명). 단, 민간인 희생자는 최대 25,000~30,000명으로 추정된다. 한편 진압군은 1,091명 사망하였다.
- 연령별 희생자는 유아 688명, 10~15세 399명, 16~19세 1,504명, 20대 5,916명, 30대 2,466, 40대 1,419명, 50대 1,023명, 60대 614명, 70대 388명, 미상 25명이었다. 아동의 범주를 15세 이하(2.8% 399명)까지 확대하면, 제주 4·3 사건 당시 어린이와 노인층의 희생은 14.5%인 2,089명에 달한다.
- 사건 이후 서북청년단 등 우익단체 회원들은 국가유공자로 남한 정부의 보훈 대상자가 되었다.
- 2003년 10월 15일 4·3위원회가 작성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가 노무현 정부에 의해 채택되었다.
- 2003년 10월 31일 노무현 대통령은 제주4·3사건 위원회의 의견에 따라 대한민국을 대표하여 '국가권력에 의해 대규모 희생'이 이뤄졌음을 인정하고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를 하였다.
- 서북청년회는 제주시민 10%까지 포함한 전국에서 30만명에 달하는 국민을 좌경분자 처단이라는 명목하에 탄압 혹은 살해했다. 서북청년회 중에 문봉제 중심의 재건파로 이승만의 친위대 역할을 하였던 안두희는 1949년 6월 26일에 경교장에 들어가 김구를 살해했다. 출처 - 위키백과
이미지 출처 전은수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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