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추천해 주셔서 더 많은 사람이 읽을 수 있도록 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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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89년 공군 병 426기, 자대배치 10월, 군번340**** 공군 17특기
(80년대 군대, 그리고 17특기를 잘 모르면 공군이라 하여 폄하하지 말기 바랍니다.)
복무기간 34개월. 원래 35개월 이었는데 군생활중 복무기간이 1개월 단축되는 감사한 일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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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 대가 페미니즘에 많은 반감이 있다고들 한다.
나는 20대도 아니고 30대도 아니다.
그러나 요즘 군대를 캠핑이라고 말하거나, 보이스카웃이라고 말하는 것들을 보면, 군인이 꿈인 아들을 둔
50대인 나는 피가 거꾸로 솟는다. 나의 아내도 마찬가지다. 이것은 2,30대 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군대 다녀온거 벼슬 아닌거 맞다. 자랑할 일도 아닌것도 맞다.
그러나 최소한 지금 군에 있는 사람, 다녀온 사람, 갈 사람들을 비하하고 조롱하는 것은 용납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이는 국가 정책적인 차원에서 막아햐 하는 범죄와도 같은 못된 짓이다.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신의 청춘을 국가에 바친 사람들을 어찌 비하할수가 있는가!
그들의 복무로 인해 전쟁이라는 극단의 폭력을 피할수 있다면 백번 절을 해도 부족하지 않는가 말이다.
이것은 페미니즘도 뭐도 아니고 그냥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는 거다. 싸가지 없는 쌍놈의 섀끼들!
나의 글을 그것들이 읽을 일도 없거니와 읽더라도 생각이 바뀌지 않을 것임은 불문가지.
내가 이 글을 쓰는 이유는
나의 얼굴을 모르는 후배들에게 네들이 했던 일, 하고 있는 일, 앞으로 하게 될 일은
결코 그것들이 재단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결코 조롱의 대상이 될만한 일이 아님을,
결코 아무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님을,
그리고 가산점의 형태든 호봉의 형태든 어떠한 형태로든 국가로부터 그 노고와 기여에 대한 감사를
받을만한 자격이 있는 귀한 일임을 알려주고 싶어서이다.
그리고 최소한 나와 내 아내는 그것을 알고 있고, 네들에게 감사하고 있으며 네들에 대한 보답을 위해
한표 행사할 의지가 있음을 알려주고 싶어서이다.
응원한다.
그리고 진심으로 고맙다.
다음은 나의 군생활의 극히 일부를 간단히 소개한다. 진짜 군대는 이거X천만 이라고 생각하면 되니,
혹시 아직도 군생활을 캠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최소한 그 생각만은 버리고 군인들에게 고마운
마음 1이라도 가졌으면 하는 진실된 바람이 있다. 내 경험의 1% 정도 되는 것들 대충 풀어놔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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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울 산꼭대기에서 물이 얼어서 세수를 못하면서 물의 소중함을 알았고
수도가 녹아 물이 나오는 날은 혹한의 냉수의 두려움을 알았으며, 또한 역설적이게도
머리에 피는 얼음꽃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어떠한 온열기구도 없는 외부온도 영하 20도의 내무반에서 하얗게 퍼지는 입김에 살아있음을 자각하였고
치워도 치워도 끝도 없이 내리는 눈을 보며 자연의 무서움을 경험했고,
아울러 나에게 그런 멋진 눈사역의 기회를 양보하던 고참들을 보면서 사양지심을 배웠고
심지어 그들이 신교대에서 받은 나의 새 장갑과 전투화를 훔쳐가서,
결국 나중에 무좀을 갖추게 해주었던, 뒤꿈치에 못이 약간 삐져 나온 낡은 전투화를 신고 ,
야상안의 깔깔이 소매를 끄집어 내려 손을 간신히 감싼후 싸리비를 잡고 눈을 쓸때 인간의 모습을 보았으며
새벽 5시 삭풍이 불던 한겨울의 산꼭대기 계단의 개수 214개가 아직까지 선명하게 기억되는 뇌 개발을 경험했고
(산에서 근무해본 사람은 알겠지만 그계단들.. 폭도 높이도 각도도 일정하지 않던 그 계단들)
자다 일어나서 쳐맞고 우리끼리 모여서 검게 변한 피부를 보면서 억울해서 웃다 울다 했던 기억도 나고.
진짜 자는놈 깨워서 패는 놈들은 사람이 아니라고 본다.
내가 별스럽게 다 맞아 봤는데 그건 정말 아니었다.
끝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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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에 불침번 서다가 김** 을 죽이려고 대검을 뺐지만 엄마 얼굴이 떠올라서 다시 대검집에 집어넣고 똑단추를
딱! 하고 채웠을때 정신이 번쩍 나면서 인간의 도를 깨우쳤으며
>> 김** 너 그날 죽었다가 우리 엄마 덕분에 살아난거 아직도 모를것이다. 한번 죽은 목숨 열심히 인간노릇 하면서 살아라.
손에 대검을 들고 잠든 그의 얼굴을 위에서 물끄러미 내려다 보면서 갈등하던 기억이 아직도 사진처럼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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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박 미복기 1명 탈영처리 했으나 며칠뒤 휴가지 부근에서 목멘 시신으로 발견된 것도 기억난다.
수사관들이 부대로 찾아 왔으나 아무 말도 하지 말라고 해서 아무 말도 못했던 나의 비겁한 모습에 스스로
환멸을 느꼈던 기억도. 그때 나도 죽고 싶을 때가 있었는데 차마 용기가 없어서 못 죽었소.
많이 늦었지만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부디 극락왕생 하오. 진심으로 미안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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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와 횟수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군대는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한다.
이제 국가가 할일을 하라.
그리고 마지막으로 후배들 감사하고 고맙다. 진심으로 여러분의 앞길을 응원한다. 힘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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