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부산 엄궁동(혹은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재심 결과 무죄가 선고되었습니다.
(그알)에서는 5년전에 한번, 작년에도 한번 더 다뤘었습니다.
> 먼저 당시 방송 내용 참고하세요.
1. 직장 상사 김씨와 차안에서 데이트를 하던 박씨(30세)가 갈대밭에서 얼굴이 손상된채 살해당함.
박씨 손에 끼워진 반지들은 그대로였음.
김씨의 진술내용에 근거하여, 장씨와 그의 동료가 살인범으로 21년 복역함.
2. 김씨의 진술 내용 :
차로 접근해온 장씨 2인조가 박씨에게 물을 얻어먹고, 김씨의 손을 테입으로 결박함.
김씨가 도망치다가 인근 물가에 빠지면서 테입이 풀렸고 쫒아온 사람과 싸우다가 서로 목이 말라 같이 차로 이동했다고 진술함.
다시 도망친 김씨는 인근 공장으로 몸을 숨김. 김씨를 발견한 직원이 묻자, "몸이 춥다. 따뜻하게 해 달라."
3. 김씨 진술과 경찰 조사와는 맞지 않는 상처자국들이 박씨 몸에 있었으나 소용없었음.
2인조가 박씨를 양쪽에서 들고 이동했다 --> 박씨 등에는 쓸려지나간 상처가 있었음. 단독으로 질질 끌려 갔을것임.
4. 장씨는 눈 앞의 사물을 분간 못하는 시각 장애인임.
가혹한 고문으로 진술했음.
당시 수사를 담당한 형사 왈, "당시 일은 기억 못해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이후로 고문 사라졌어요."
김씨는 20년전 지병으로 사망.
5. 1990년 노태우정부가 범죄와의 2차 전쟁을 선포함.
초등학생, 여고생도 범죄자로 잡혀갔음. 90년 한해에만 억울하게 잡혀간 수가 1200명임.
> 이제부터 오늘 방송 내용입니다.
장동익님과 최인철님이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감옥에 갇히자,
장동익님의 모친께서는 분홍색 보자기에 사건 기록과 판결문을 담아 아들의 억울함을 풀기위해 백방으로 애쓰시다가 2003년 돌아가십니다.
21년 옥살이 끝에 풀려나온 두 분은 빛바랜 분홍 보자기 꾸러미를 들고서 일요신문 문상현 기자님을 만나게 되고, 최초의 의혹보도 기사가 나옵니다.
재심을 담당하여 무죄를 이끌어내신 박준형 변호사님은 이 사건을,
"가장 조직적이고 광범위하게 조작된 사건"이라고 평가합니다.
당시 판사는 "자백을 한 날 이후에 다시 고문을 당했다는 두 사람의 주장은 말이 안된다"고 배척하였는데,
'자백 후에도 더 자세히 앞뒤 정황을 끼워 맞출려고 추가 고문이 행해지는 것'을 몰랐을 겁니다.
증거는 오직 '자백'뿐이었던 살인 사건인데 말이죠.
당시 담당 형사과장은 "부산 경찰의 전설"로 불리게 된 공ㅇㅇ형사로,
순경으로 출발하여 무려 4번의 특진을 하고 퇴직했다네요.
두 분이 당한 고문은,
수갑을 찬채로 철봉에 통닭구이처럼 매달리게 해서 얼굴에 수건을 감싸고 그 위로 물을 붇는 방식이었다고 합니다.
두 분 보다 2달전 소매치기로 같은 곳에 붙잡혀온 홍씨도 같은 수법의 고문을 당했다고 하니,
당시 고문 수법이었던 것 같습니다.
1990~1992년에 걸쳐 3년간 부산지역에서 신문에 보도된 경찰 고문 의혹건은 33건이나 되네요.
두 분에게는 살인사건외에도 여러 강력사건 혐의가 덧붙여져 있었는데,
최인철님은 18건의 강도 사건을 저지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중 16건에서 피해자는 모두 "일체불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체불상 의 뜻 = 피해자가 누구인지 일체 알 수 없다.
엄궁동 살인사건 전에 한번도 강력범죄 전과가 없는 두 분에게 범인으로써 개연성을 만들기 위해,
조작이 의심되는 사건을 만들어 냅니다.
"1989년 한ㅇㅇ경찰은 그날 처음 만난 여자와 새벽에 강변가에 차를 세워놓고 데이트를 하다가,
두 강도에게 돈을 빼앗기고
와이셔츠로 손을 결박당한채 르망차 트렁크에 감금됩니다.
결박을 풀고 트렁크를 팍 치자 문이 열렸고, 놀란 강도가 도망치자 곧장 인근 경찰서로 가서 비밀 신고를 하고 차로 돌아와 보니 여자는 사라지고 이후 찾을 길 없다.
2년 뒤, 엄궁동 사건 담당 형사가 한경찰을 찾아와서,
"비슷한 수법 같은데 이 사람들이 맞냐?"고 물으니,
딱 그 사람들이었다."
물론 이 역시 재심에서 무죄 선고가 내려집니다.
한씨가 진술한 차량은 르망이었고,
둘러댄 차량번호는 스텔라 차종이었으며,
차량 소유주는 술집 마담이었구요.
르망 트렁크는 툭 쳐서 열리지도 않습니다.
수사 진행 특정 시점에서 갑툭튀했기 때문에 재심판사마저도 한소리 했다네요.
재심 무죄가 나고, 한씨가 말합니다.
"그 새끼들 팔자폈네"
"나라 꼬라지가 판결을 그리 하고"
공씨도 말합니다.
"(당시에) 잘못된거 하나 없지."
당시 부산일보의 김일규 기자님이 사건을 취재하며 의혹제기를 하셨었습니다.
첫째, 숨진 피해자의 참혹한 모습에서 무조건 원한 관계로 인한 사건으로 생각되어
김씨를 만날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만나지 못했다고 합니다.
둘째, 김씨는 사람이라면 극한 상황에 처했을때 일반적으로 하는 행동을 하지 않았습니다.
느닷없이 나타난 범인에게 스스로,
"청테이프가 뒷좌석에 있으니 그걸로 나를 결박하라"는 말을 한다는 게 어이없죠.
셋째, 범인에게서 도주한뒤에는 신고해야 하는게 맞는데,
김씨는 사료공장으로 도망친후 숨어있다가 공장직원들에게 발각되자
"몸이 추우니, 따뜻한 곳에 데려달라."
고 말하였고,
사건의 최초 신고자는 김씨를 치료한 의사였습니다.
또한, 김씨는 얼굴과 몸 여기 저기에 외상을 입었었는데,
법의학적으로 손상부분이 사건의 내용하고 맞질 않습니다.
범인들의 공격에 방어흔으로서 손목과 팔에 상처가 있어야 하는데 깨끗했습니다.
즉, 본인이 직접 자해했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김씨는 20년전 사망했습니다.
피해자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사건으로 기록된것 자체가 오류 ㅡㅡ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