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중권은 “검찰 조사가 혐의를 찾기 위한 것도 있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 피의자한테 자기 소명의 기회를 주는 것이다. 그런데 이재명 대표는 안 했다”며 “떳떳하면 영장심사 받아라”고 주장한다. 한동훈은 “이재명 대표님 말씀처럼 다 조작이고 증거가 하나도 없다면 대한민국 판사 누구라도 100% 영장을 발부하지 않을 것”이라며 “본인에게 제기된 여러가지 소위 ‘사법리스크’를 일거에, 조기에 해소할 좋은 기회일 텐데 그걸 마다하고 특권 뒤에 숨으려는 이유를 국민들께서 궁금해 하실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위 두 사람처럼 어떤 이들은 ‘영장실질심사는 자기 소명의 기회다. 떳떳하게 심사를 받아서 혐의를 해소하면 되지 않느냐’라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이재명 대표는 그런 기회를 걷어차고 불체포특권 뒤에 숨는다. 당당하지 못하다’고 꼭 덧붙인다. 이 말을 듣고 당당하게 “나는 영장실질심사를 받겠다”고 한다면 순진하거나 뭔가 믿는 빽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민주당의 모 의원은 “영장실질심사는 장기간 수사한 검찰에 대응해서 관련 증언이나 물증을 검토해 반박할 기회가 없는 피의자에게 매우 불리하다”고 말한다. 심사하는 판사와 달리 피의자는 검찰의 증거를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또 ‘최대 24시간 인치, 최대 24시간 유치’ 상황에서 자기가 구금될지도 모르는 심사에 대응해야 한다. 피의자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 영장실질심사가 소명하기에 유리한 기회이고 혐의 해소하기에 유리한 기회라면 거의 모든 피의자가 사전구속영장을 좋아할 것이다. 그러나 실상은 거의 모든 피의자가 사전구속영장을 싫어한다.
한동훈은 “체포동의안은 구속 여부를 국회에서 결정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다른 국민들과 똑같이 판사 앞에서 (영장실질)심사를 받을 수 있도록 판사 앞에 가게만 해달라는 얘기”라며 민주당의 체포동의안 부결 방침을 비판했다. 국회가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을 가결하면 법원은 사전구속영장(구인을 위한 구속영장)을 발부한 후 영장실질심사를 하게 된다. ‘사전구속영장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지만 체포하지 못한 피의자에 대해 영장실질심사를 받도록 강제하거나 신병확보 없이 구속여부를 판단하는 것’이다. 검찰의 ‘이재명 대표 구속영장 청구서’에도 구속사유를 적시한 ‘결어’ 부분에 ‘피의자(이재명 대표)에게는 본건 범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국회가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을 가결한다면 국회가 이재명 대표 사전구속 결정을 용인해주는 것이 되고 ‘이재명 대표에게 범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고 인정해주는 것이 된다.
2012년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국회에서 부결됐다. 당시 새누리당 김용태 의원은 본회의에서 “영장실질심사도 하기 전에 국회에서 먼저 체포동의안을 처리한다면 이는 국회가 혐의 내용을 알지도 못하면서 구속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고 말했다. 이재명 대표 사전구속영장청구서를 읽어본 국회의원도 “새로운 내용은 없네요. 수사기록을 보지 못해서 검찰이 숨겨놓은 증거가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청구서에 언급된 증거만으로는 법원이 쉽게 유죄라고 판단할 사안은 아닌 듯 합니다. 구속영장청구서의 마지막 장은 구속이 필요한 사유를 요약한 것인데 본문에도 이 정도 이야기 뿐입니다. 제가 민주당 국회의원이라 객관적일 수 없겠지만 검찰의 일방적 주장이라고 느껴질 뿐 불구속 수사 원칙을 깨고 구속까지 해야 하는 사안이라는 생각이 안 듭니다”라고 말한다.
국회가 체포동의안을 가결하면 법원은 사전구속영장을 발부한다. 국회가 ‘구속을 인정하는 꼴’이 된다. 그런데 구속(여기서는 사전구속)은 죄를 범하였다고 의심할 만한 상당한 이유가 있다는 판단이 서야 한다. 그러함에도 만약 국회가 체포동의안을 가결한다면 범죄사실에 대한 합리적인 심증도 없이 구속을 인정하는 불합리한 결정을 내리는 셈이 된다. 그래서 2012년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 체포 동의안에서 부결이 당연했다는 것이다. 당시 중앙일보도 “문제는 법원이 구속 여부를 판단하기도 전에 동료 국회의원들이 혐의 내용도 제대로 모르는 상태에서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점이다”라고 보도하면서 정두언 의원 체포동의안 부결에 힘을 실어줬다. 그리고 이는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을 앞두고 있는 현 국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
이재명 대표를 꼭 체포해야 할 사유가 있다면 ‘사법리스크를 일거에, 조기에 해소할 좋은 기회일 텐데 그걸 마다하고 특권 뒤에 숨으려 한다, 당당하지 못하다' 그러면서 '죄가 있으니까 그런 거 아니냐!’는 식으로 언론플레이로 압박하지 말고 그 사유를 합리적인 토대 위로 세워 보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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