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15년전..
네이트판이라는 곳이 창궐하고 된장녀 김치녀 등의 단어가 커뮤니티를 뜨겁게 달구고 있을 무렵이었다.
남자는 차가 있어야하고 여자에게 명품백 정돈 사줄 능력은 되어야 한다는 지금 들어도 어처구니가 없다 싶은 문장을 보고 지랄하기 보단 움찔했었다.
난 차도 없고 명품백은 커녕 뭐먹을까란 소리조차 함부로 못할 처참한 경제력을 지녔었으니..
세후 200을 찍자마자 내차마련을 알아보는데
당시 md아반떼랑 포르테 라세티프리미어가 1800~1900선 했었고 아반떼는 작고 소나타는 아직 과하지?라는 희귀한 논리로 1,800cc의 라프를 선택한 나는 중고로 넘기기전까진 매우 만족하며 첫 차를 만끽했었다.. 물론 그 홍역을 치루고도 두번째 차를 sm6를 풀옵으로 뽑아내는 기염을 토한것도 어질어질하다..
쨌든, 차 할부가 원활하게 돌아갈때쯤 쥐꼬리만큼 나온 연말 상여와 없는 살림에 모아둔 월10짜리 적금통장을 타서 야심차게 구여친 현와이프를 데리고 백화점에 입성했다.
명품이 뭔지 알바가 없던 나는 백화점 정문 바로 옆에 가장 크게 광고된!! 무려 코치!!로 당당히 행선지를 정했고, 여윽시 가장 비싼 매장 답게 백화점 정문 바로 옆에 위치했었다.
구여친 현와이프는 뭐가 젤 맘에드냐는 내 질문에 떨떠름하게 하나를 골랐고 제가 얼마예요를 외치자 퍽 당황했었던거같다.
나는 그게 어머 자기야 이렇게 비싼걸 왜에 라는 뜻으로 받아들였는데 지금와서 돌아보면 야이 자식아 사줄거면 좌표가 틀렸지 였던거같기도 하다..
하지만 이 모든건
70만원입니다!
'응? 명품백이 70밖에 안한다고?? 줘요 그거' 따위의 호승심에 밀린 내 귀엔 들리지 않았고.
구여친 현와이프는 체념한듯 기쁘게 받아들이고 한참을 나를 위해 그 백을 들어주었다..
세월이 흘러 10년쯤 전..
경제력도 명품에 대한 상식도 많이 올라간 나는 이번에는 좀 달라진 나를 보여주겠다는 굳은 결심으로 백화점에 데려가 이번엔 니가 고르라며 아내에게 턱짓했다. 지금 돌이켜보니 키즈카페에 딸래미 데려갔을때의 뒷모습과 비슷했던거 같다.
4시간을 뛰어다니던 구여친은 맛있는거 먹으러가자며 백화점을 나왔고, 예상보다 훨씬 높은 가격에 식겁한 나는 다행이단 마음보단 내 표정이 티났나 하는 그지같은 존심이 더 중했던 애송이 30대였던거같다.
7년쯤 전이었나.. 후배 대리 과장 와이프들이 돌잔치 결혼식에 자랑스레 들고오는 수많은 백에 괜히 내가 그런건지 아내가 뒤로 거는 백이 왠지 숨기는거처럼 보여서 식이 끝나자마자 아울렛에 끌고가 브랜드마다 하나씩 골라주며 들고 다니라 했었다.. 정작 와이프는 하나면 된대고도 그게 그렇게 좋았는지 한참을 자랑을 하고 다녔다..
아내 40에는 에루샤중 하나는 사줘야겠다고 혼자 벼르다가 신혼즈음에만 해도 400이던게 1500이라 도저히 저건 아닌거같아서 눈을 돌린게 디올..
가격대가 그나마 만만해서.. 마흔에 발리가자고 모은 적금을 동남아로 돌리고 그 차액으로 하나 사줬는데..
더현대에서 쇼핑백 들고가는 사진을 이백장을 찍어줬는데..
이제는 아내도 너무 기쁘게 받아주고 나도 카드 할부 긁는게 아니라 더 없이 행복했는데..
한달도 안되서 이렇게 유명해져버렸네요 ㅎ
누군가에겐 한번 만나주는 댓가일지라도.
누군가는 10년의 적금으로 사는 행복입니다 ㅎ
저희 아내는 아직도 아침에 신랑 한대 피고 오면 밥 차려놓고요.
씻고 나오면 속옷 양말 셔츠 코트까지 싹 깔아두구요.
다 입고 나오면 영양제에 혈압약에 챙겨주고
출근하며 마시라고 남편이 제일 좋아하는 흑임자라떼를
건내줍니다.
김치녀로 살게 해주겠다고 다짐하며 살고 있는데
아무래도 제가 더 많이 받고 있는거 같네요.
1년내내 무리하고 드디어 면역력이 터져서 크리스마스에 병실에 입원해서 넋두리해봤습니다 ㅎ
긴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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