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접증거와 목격자가 없는 김성재 변사사건 공판은 검찰의 법의학과 변호인의 법의학이 본격적으로 일합을 겨룬 몇 안 되는 형사재판이었다
1996년 5월20일 월요일, 서울서부지원- 결심공판
사건 당일 새벽 4시40분께 피고인 K를 호텔 앞에서 보았다는 여중생 박○○이 이날 검찰 쪽 마지막 증인.박○○은 부모님 귀가 시간 전에 집에 가야해 시계 보면서 호텔 앞에 있던 까닭에 목격 시간을 정확히 기억한다며 사건 이후 어떤 여자가 학교에 찾아와 호텔에서 목격한 얘길 함부로 하지 말라고 했다고 증언.
박○○의 증언은 K의 혐의를 더욱 짙게 만드는 진술이었지만, 이후 항소심에서 진술을 번복.
결과적으로 증언의 신빙성은 낮아졌다.
변호인이 다음과 같은 취지로 최후변론했다.
△동료 7명이 자고 있는 호텔방에서 여자의 몸으로 28회의 주사를 놓는 건 불가능한 점
△피고인이 애완견을 안락사시키기 위해 구입한 졸레틸이 김성재 몸에서 나왔다고 해서 같은 물질이라고 단정할 수 없는 점
△변호인 쪽 법의학자들은 시신에서 검출된 졸레틸과 황산마그네슘의 양만으로는 사망에 이른다고 볼 수 없다고 말하는 점
△변호인이 수의사에게 의뢰해 받은 동물실험 결과도 이를 뒷받침하는 점
△피고인이 김성재와 계속적으로 친밀한 애인관계를 유지해 온 점 등을 볼 때 피고인이 김성재를 살해할 아무런 이유나 동기가 전혀 없고 혐의를 입증할 직접증거조차 전혀 없기 때문에 무죄라고 주장했다.
K는 김성재와의 관계가 매우 좋았기 때문에 살해할 이유가 없었다며 거듭 결백을 주장했다.
“검사는 구형하세요.”
안원식이 말했다. “피해자가 반항 흔적이 없고, 범행 이후 졸레틸과 주사기를 은닉하였으며 서울대 이정빈, 고려대 황적준 법의학과 교수, 국과수 법의학과장 김광훈 등의 사망추정시각이 새벽 1시~2시50분 사이로 일치하는 등 과학적이고 객관적인 증인들의 진술 등으로 종합해 볼 때, 본 건은 계획적 범행으로 우발적으로 살해할 다른 사건들과는 근본적으로 다를 뿐 아니라, 피고인은 다른 사람의 범행인양 호도하는데 급급할 뿐 뉘우치는 마음이 없어 동정의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또한 그릇된 집착과 증오, 욕심 때문에 애인을 치밀한 계획하에 살해한 뒤 범행을 은폐하려고 하는 등 죄질이 극히 불량합니다. 형법 제250조 제1항의 살인죄를 적용, 피고인 K에게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처함이 마땅합니다.”
재판장은 보름 뒤인 6월5일 오전 10시에 선고하겠다고 밝히며 결심공판을 끝냈다
1996년 6월5일, 운명의 날-김성재가 죽은 지 반년이 넘은 때.
오전 서울지법 서부지원 형사합의부(재판장 이국주)에서 김성재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피고인 K에 대한 선고공판이 열렸다. 서부서 경찰들도 상부 보고를 위해 방청했다.
“사건번호 96고합2 살인에 대한 선고공판을 시작합니다.” 재판장인 이국주 부장판사가 판결문을 읽었다. (중략) “피고인이 범행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으나, 사건 발생 당시 정황과 여러 증언에 비춰볼 때 피고인이 동물마취제인 졸레틸을 서서 김성재를 살해했다는 검찰의 공소사실이 대부분 인정된다. 피고인은 김성재를 살해한 뒤 범행을 은폐하려 했고 자신의 범행을 부인하면서 잘못을 뉘우치는 빛을 전혀 보이지 않고 있으나 초범인데다 김성재가 자신의 앞길을 방해한다는 이유로 피고인과의 관계를 끊으려 한 점을 참작, 법정 최고형인 사형은 피하고 무기징역을 선고한다.”
방청석에서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재판장이 증거 사실을 열거할 때 고개를 가로젓던 K는 무기징역이 선고되자 재판부를 향해 소리쳤다. “난 성재를 죽이지 않았어요!” 팬들이 피고인을 향해 야유를 보냈다.1 법정 경위들이 방청객과 피고인을 제지했다.
이날 재판부는 검찰이 제기한 공소사실들에 대해 모두 증명이 충분하다며 유죄로 인정했다. 4개월 동안의 1심 공판이 그렇게 끝이 났다. 변호인들은 법정 앞에서 기자들과 만나 “피고인의 무죄를 확신한다. 항소심에서 무죄임을 입증하겠다”고 밝힌 뒤 법원을 떠났다.
1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받자 K의 부모는 변호사를 교체하기로 했다.
항소심 변호인으로 대형 로펌인 광장 소속의 서정우(당시 53세), 천상현 변호사(당시 32세)가 수임
당시 서정우는 가장 잘 나가는 전관 변호사였다. 그는 삼풍백화점 사고, 한보 비리사건, 성수대교 붕괴사고 등 90년대를 대표하는 대형사건의 변호인이었다. 차관급인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내고 1993년 변호사로 개업한 서정우는, 경기고 서울법대를 나와 군복무 중 사시 6회에 합격, 판사로 임관해 서울민사지법(서울중앙지법의 전신) 부장판사와 초대 대법원 수석재판연구관 등 법원 내 엘리트코스를 밟았다. 법원 내에서 차기 대법관으로 꼽혀온 터라 법복을 벗을 때 후배 판사들 가운데 충격받은 이가 적지 않았다는 후문이 돌았을 정도로 법원 내 신망이 두터웠다.
개업 첫해 납세실적 전국 3위를 기록할 정도로 변호사로서도 승승장구했다. 당시 법조계에선 서정우가 개업 첫해 수임료로만 3자리수(100억원대)를 벌었을 거라는 말이 나돌았다. 김성재 사건을 수임하기 전인 1995년 12월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구속기소된 한보그룹 정태수 회장의 변호인단을 이끌었다.
김성재 피살사건 항소심-
사형에서 무죄로 극적 반전이 이뤄진 데는 피고인 L의 2심 변호인이었던 법무법인 덕수의 김형태(당시 40세?연수원 13기) 변호사의 노력이 주효했다. 그는 항소심에서 검찰의 사망추정시각과 살해 동기 등 공소사실을 하나하나 반박해 무죄를 이끌어내는데 결정적 기여를 했다. 김형태는 K의 어머니 고○○의 간곡한 요청에 따라 정식 수임은 하지 않은 채, 김성재 사건 항소심에서 변론 자문의 도움을 줬다.
전관예우 관행을 뿌리뽑자 !!
검찰개혁 가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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