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과 마음이 건강한 대한민국 남자라면 누구나 군에 가기 마련이고, 군에 가면 군복으로 갈아입고 군에서 지급한 군화를 신게 된다. 요즘은 자기 사이즈에 맞는 군복과 군화를 지급받지만 옛날 군대에서는 군화가 안 맞으면 군화에 발을 맞추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군에서 지급하는 피복과 군화는 주는 대로 입고 신어야 했다.
이제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나 과학기술면에서 선진국 수준에 와 있다. 무역 규모도 세계 9위이고, 미래 성장 잠재력을 나타내는 과학 기술 인프라는 세계 4~5위 수준이다. 이러한 경제력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섬유와 등산화 분야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도 우리 군은 잊을 만하면 군용 팬티가 어떻고 군화가 어떻다는 등 국회와 언론에서 질타를 당하고 있다.
군대 생활은 눈을 뜨는 순간부터 걷고 뛰는 시간의 연속이다. 발이 편하면 다른 일도 잘 되기 마련이다. 과거 유럽을 제패했던 프랑스 군대가 승승장구했던 이유는 제화점에서 맞춰 준 군화 덕택이라는 주장도 있다. 보병 전투가 기본이었던 그 당시에는 얼기설기 엮어 만든 신발을 신은 다른 나라 병사들보다 가죽 군화를 맞춰 신은 프랑스 병사들이 훨씬 잘 걷고 더 빨리 기동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군에서 무기체계는 연구개발하지만 군화는 비무기체계이기 때문에 연구개발을 하지 않는다. 비무기체계는 상용품을 구매하는 것이 원칙이므로 연구개발할 예산도 없다. 그렇다고 해서 일반 구두를 생산하는 제화업체가 신형 군화를 별도로 개발할 이유도 없다. 돈을 투자해 신제품을 개발해도 사준다는 보장이 없기 때문이다. 군에서는 최근 성능이 개선된 군화를 확보하려고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지만, 국민의 눈에는 아직도 병사들의 사기와 직결되는 군화나 피복 등에 대해 문제점이 지적될 때만 보완하는 수동적인 군으로 비춰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는 비무기체계로 분류된 방독면ㆍ방탄조끼ㆍ방탄헬멧 등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북한의 화생방 위협에 필수장비인 방독면이 비무기체계로 분류되다 보니 15년 이상 연구개발하지 않고 있다가 국회에서 방독면 정화통에 유해물질인 크롬이 함유됐다는 문제가 제기되자 성능개선에 착수한 것도 비무기체계에 연구개발 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이제부터라도 비무기체계에 대해 좀 더 관심을 갖자. 다른 나라들처럼 별도 연구소를 만들어 보자. 그러지 못하면 연구개발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예산이라도 확보해 주자. 매년 정책적으로 10% 이상씩 증가시키는 무기체계 연구개발 예산 중에서 1%도 안 되는 200억 원 정도라도 비무기체계 연구개발에 투자해 보자. 첨단무기 개발도 중요하지만 60만 병사들에게는 일상생활에서 겪는 불편을 해소해 주고 전투 상황에서 목숨을 구해 주는 장구류를 개선해 주는 것이 훨씬 더 사기를 올려 주기 때문이다. 군인은 사기를 먹고 산다고 하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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