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일파 이두황의 묘
(전주 한옥마을에서 1km)
명성황후 시해에는 일본 낭일들뿐만 아니라
조선인들도 가담했는데
이두황이 그 중 한명
(이토 히로부미 7번째 양아들 이두황 )
1. 명성황후 시해
2. 을미사변 가담
3. 동학농민운동 진압
4. 호남지역 의병운동 탄압
일본인들도 그의 행동을 비난했을 정도
.
.
동학농민군 토벌대장 이두황
나라를 위기에서 구하려는
동학농민군을 무참히 살해함
이두황이 쓴 일기(양호우선봉)
1894년 음력 9월 10일
'고종이 명하되 이두황을 장위영 영관에
임명하니 바로 내려가 동학농민군을 토벌하라'
- 이두황 일기-
청일전쟁 때 일본사령관을 찾아가
일본군 앞잡이 노릇을 함
그 공적? 으로 동학농민군 토벌 대장이 됨
조선을 지배하려한 일본에게
가장 위험한 세력이 동학농민군.
일본 총감 이토 히로부미는
일본군 후비보병 19대대를 투입해
동학농민군 섬멸 작전을 펼치는데
이두황(이토 양아들)의 조선 부대가
일본군 지휘권 아래 있었다.
" 일본군 중위 사라키 세이타로와
소위 미야모토 다케타로가 내일 아침에
출발한다고 하니 그들을 맞이해 대접하고
힘을 합하여 기필코 큰 공을 세워...
- 이두황 일기 -
충청도 지역 동학군 진압
1894년 음력 10월 14일
여관 앞에서(강동희, 이희영) 총포로 쏘아 죽이고
마을 집들은 모두 불을 질러 소굴을 태워버렸다
- 이두황 일기-
.
1894년 음력 10월 16일
수색하여 3명을 찾아 죽이고 그들이 생활하던
초막 400여 곳과 민가 200여 호를 전부 불살랐다
- 이두황 일기(충북 보은) -
천안 세성산(독립기념관 인근)
1894년 음력 10월21일
패배해 달아나는 동학농민군을 추격.
수십 리를 뒤쫓으면서 더러는 쏘아 죽이고
포로로 잡아 완전한 승리를 거두었다
- 이두황 일기-
토끼사냥 하듯 한쪽으로 몰아
동학농민군을 학살한 일본군
(3만 3천명 살해)
.
일본군이 돌아가자
남아있던 동학군을 찾아 잔인하게 죽인 이두황
1894년 음역 12월 26일
5명을 쏘아 죽였다. 그 중 한 명은 목을 베어
사람들에게 공포심을 주고 머리를 나무상자에
넣어 장교에게 보내어 바쳤다
- 이두황 일기-
1894년 음력 12월 30일
동학농민군 50여 명을 잡아 두목 3명은
목을 베었고 나머지는 쏘아 죽였으며
시신은 그대로 두었다
- 이두황 일기-
1895년 음력 10월 8일
명성황후 시해 사건 당시 이두황은
길잡이 역할을 했다.
가담한게 알려지자 이두황과 아들 이진백은
부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밀항.
일본에 가서는 도박과 여색을 탐함
이토 히로부미 총애를 얻어
다시 조선에 돌아온 이두황
1909년 호남지역 의병을 대대적으로 토벌함
정미의병이 붕괴되자 일본은 바로
한일병합 조약을 체결함
이두황은 죽을때까지
평생 일본의 개로 살아간다
현재 이두황의 묘소를 포함한 근처땅을
공동 소유중인 후손들
(4만 282m² 임야)
지도에서 이두황을 검색해보세요.
민비는 죽어 마땅했습니다. 나는 조선의국모다 발언은 야사임
욕먹을 인간이죠
왜넘들이 우리나라의 왕비를 시해한 사실을 전혀 별개의 사건이며
역사를 두고두고 치욕중의 치욕이라 해야 합니다.
우리 후손들이 반드시
이 처절한 모욕을 되갚아 줄 날이 있을 것으로 믿습니다.
한쪽눈이 찌그러진게 누구랑 닮았네요.
의문.... 욕나옴
전주시 완산구 중노송동
저희 친 증조할아버지도... 일제시대때.. 일본 와사다 대학을 나와서, 조선으로 돌아가서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넘버 2.. 부사장까지 일을 하셨습니다.
당시 많은 땅을 확보한 그덕분에 우리 친할아버지는 지금까지 단한번도 일을 해본적이 없고 손에 물하나 안묻치고.. 아주 잘 살고 계시죠..
친일파가 확보한 땅은 반드시 나라로 회수 되어야 합니다.!! (적극 찬성합니다!!!)
참 증손자로써 너무 얼굴이 부끄럽고.. 정말 죄송스러운 마음이 늘 있습니다... ㅠㅠ
제가 물려받는다면, 당장 땅 팔아서 독립운동가 자손분들 어렵게 사시분들에게 그럴겁니다!!!
정말 우리나라 조상님들에게 너무 죄송한 마음뿐입니다... 어렸을때는 동양척식회사를 잘몰랐는데... 알고보니.. 불쌍한 농민들 땅을 힘으로 뺏어, 조선총독부 배를 채운 기관이라는것을 안 순간.. 정말 너무 부끄럽더라구요..
그래서 그런지.. 친할아버지 개인적으로 너무 싫어합니다. (원래부터 할아버지가 이기적인 분이시지만요..)
저희 증조할아버지가 동양척식주식회사에서 일을 할때 돌아가셨는데..(당시 사장은 일본사람 그리고 할아버지는 부사장)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그누구도 말을 안해주네요.. 특히 할아버지에게 물어보면 말씀을 회피 하십니다.. 제 생각에는 동약척식주식회사가 독립군분들이 폭탄 투척해서 당시 많은 사람들이 죽었는데..그때 아닐까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왜 나라를 팔아먹엇을까....
전주 여기서 멀지않은데....
후손들이 꼭 사죄하길...
잡혀가려나요? 하고싶네요
전주 가까운데
사실 진즉에 죽었어야되는 인물임
개그튼년
대구가 아니고 전주에 파묻어 놨네?
보배드림에서는 대구출생에 대구에 묻어놔야 씹고뜯고 맛보고 즐기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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