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삼차게 써봤던 왕년의 인기가수 A씨에 대한 호응이 그닥 높진 않았지만 개의치 않고 의연하게 논현동 다가구 이야기를 또 올려봅니다.
참고로 저는 90년대 초중반부터 약 15년 정도를 논현동 다가구에서 살았습니다.
어머님이 논현동에 단독주택을 매입하셔서 다가구를 만들어 3층에 저희가 살고 반지하, 1,2층에 원룸을 두고 월세 받는 형태 였지요. 저희 집은 층마다 3가구씩, 반지하, 1층, 2층에 3가구로 총 9개의 투룸이 있었습니다.
집짓고 처음에는 일반 직장인이나 자영업자 가족분들도 좀 거주하셨는데 어느새부턴가 속칭 나가요 언니들...또는 그쪽 관계자 분들이 점점 많이 거주하시게 되시더군요.
대부분 형편이 어려운 가정에서 좋지 않은 교육 환경과 나쁜 친구 탓에 어쩌다보니 끌려들어와 할 수 없이 나가요가 되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 그런 분도 계시긴 하지만 그냥 평범한 집안에서 배울거 다 배웠는데 유흥이나 돈벌이를 위해 이 세계에 자발적으로 뛰어드신 분들도 생각보다 꽤 많습니다.
제가 기억하는 특이했던 나가요 언니들 몇 분 소개해 봅니다.
물론 20년도 넘은 90년대 중후반이 배경이니 지금과는 많은 차이가 있을 수 있고요
나가요 언니들이 다 이런건 절대 아니고 나가요 직업에 대한 비하도 아니니 오해 없으시길 바라겠습니다.
그냥 원룸 장사 하다보면 이런 경우도 있구나 하는 정도로 재미로 읽어 주세요.
1. 집에서 싸우고 가출해 홧김에 나가요 하는 부자집 외동딸 언니
원래 살던 집이 강남 모처 찐 부자님들 사는 고급 빌라촌이고 아버지가 이름대면 다 알만한 중견기업 사장님이고 본인은 나름 괜찮은 대학까지 나와서 아버지 회사에 다니던 언니.
집안이 상당히 보수적인 편이라 언니의 개방적인 사회 생활로 이런저런 마찰이 많았는데 결국 아버지랑 대판싸우고 쫓겨난건지 자기가 나온건지 가출을 했다고 하더군요. 처음에는 친구네 집에서 아빠 카드로 펑펑 쓰면서 지내다가 이내 아빠가 카드를 끊어버리자 친구한테도 내 쫓기고.. 일수 아저씨에게 보증금 500 빌려서 나가요 전선에 뛰어든 분입니다.
부자 친구들이 주변에 많을텐데... 카드 끊겼다고 나가요를 꼭 해야 했는지 ? 돈 떄문이라기 보다는 뭔가 일탈이나 관심을 끌기 위해 나가요를 한것 같기도 합니다. (그냥 남자가 좋았을 수도...) 하튼 정서적으로 많이 불안정 했었습니다. 꽤 많이 버는것 같은데도 워낙 씀씀이가 커서 그런지 월세 밀리는 적도 많았고 집앞에 일수 아저씨가 찾아 오는 일도 많았습니다. 쓰레기 처리나 담배 꽁초 아무데나 버려서 저랑도 몇 번 마찰이 있었네요. 반년 ? 정도 살다가 엄마라는 사람이 수행 비서 비슷한 사람 데리고 와서 보쌈 비슷하게 들쳐업고 집으로 돌아 갔네요. 맨날 집 뒷 골목에서 침 찍찍 뱉으며 통화하면서 KOOL 담배를 즐겨피던 K 언니, 지금은 시집가서 애 낳고 사모님 소리 들으며 잘 살고 있겠죠 ? 이제는 가출 하지 마세요.
2. 한번도 집에서 음식을 해먹지 않은 언니
이분은 배민이나 요기요가 없던 90년 중반시절부터 오로지 배달과 외식으로만 일년을 살고 나가신 분입니다.
지금보면 나름 시대를 앞서 나가신 선구자 같은 분이라도 할 수 있겠네요.
보통 이사날 보증금 빼주기 전에 가스비, 전기료 정산과 방 상태 점검을 하는데 가스렌지가 없네요.
"아, 벌써 가스랜지 빼고 가스 끊으셨나 봐요 " 하고 물어보니 "아니요. 원래부터 가스렌지 없었어요" 하시네요.
아 그럼 전자렌지나 부르스타 쓰셨나 보다 했는데 이사짐에 그런것도 하나 없더군요.
집에서 해 먹는거 지저분하고 설거지 귀찮아서 자기는 다 배달시켜 먹거나 나가서 사먹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보니 부엌에 변변한 접시, 그릇도 하나 없더군요.
집에 가스랜지, 전자랜지, 부르스타가 없으니 일년동안 그 흔한 라면 하나 안 끓여 먹은 겁니다. 지금이야 배달앱에 없는 음식이 없지만 당시만 해도 중국집이나 치킨, 피자 정도만 배달이고 집근처 백반집 같은 곳에서 식사 배달 하는 것도 시장이나 가게 같은 곳에서나 주로 시켜 먹었지 개인 가정에 배달하는게 흔한 일은 아니였거든요. 도무지 일년동안 삼시세끼를 어떻게 다 시켜 먹은건지 궁금하기만 합니다. 짜장면 성애자인가..?
집앞 현관에 빈그릇이 놓여 있을 떄가 많아 그냥 그런가 보다 했었는데 집에서 일년간 음식을 한번도 해먹지 않았다는 J 언니
맛난거 사먹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단무지에 짠지만 있더라도 따뜻한 집밥이 최고입니다. 신랑한테 밥 잘 챙겨 주고 있는지 궁금하네요.
3. 집에 이년치 쓰레기를 차곡차곡 쌓아놓은 언니
희대의 쓰래기녀.
어찌어찌하다보니 임대 만기가 되었는데 방 체크를 못하고 그냥 보증금 잔금 주고 내보내게 되었습니다.
2년동안 얌전하고 조신하게 사신 분인데 망가진거 하나도 없다고 해서 그냥 믿고 내보냈는데 다음날 청소하러 방에 내려가보니 정말 가관 이더군요.
방에 들어가니 뭔가 쿰쿰한 곰팡내 비슷한 냄새가 진동을 합니다.
아이고 이게 무슨 냄새야 하고 환기를 시키려 베란다 창문을 열어보니 이년치 생리대가 수북히 쌓여 있네요.
아.. 이게 무슨 사이비 종교 의식인지 ?? 다 쓴 생리대를 재물로 바치는 종교도 있나 ??
왜 다 쓴 생리대를 버리지 않고 여기에 이렇게 모아 놓은 걸까요 ??
생리대 말고도 버려야 할 생활 쓰래기가 베란다에 그득합니다. 이거 치우느라 100리터짜리 쓰래기 봉투를 여러개 썼네요.
정말 2년동안 조신하게 살면서 엄청 싹싹하고 깔끔하게 사는 것처럼 보였던 반전 언니. 이래서 사람은 같이 살아봐야 아는건가 봅니다. 지금은 분리수거 잘 하시고 쓰레기 잘 버리고 사시는지 궁금하네요.
4. 개 세마리 키우던 언니
원래 개는 시끄러워서 못키우게 하는데 계약 조건 위반하고 몰래 개 들여온 언니 입니다.
나중에 들켜서 방 빼라고 했는데 얘는 조용해요 얘는 얌전해요 얘는 착해요 뭐 이런 알랑방구로 어머니를 구워삶아서 어찌어찌 넘어갔네요. 근데 개가 무지 이쁘긴 이뻤습니다.
그러더니 어느날 두마리가 되고
그러더니 또 어느날 세마리가 됨.. ㅠㅠ
언니는 낮에는 집에 있고 밤에 일을 나가니... 개들만 있는 밤에 주로 시끄럽게 짖어대는데
ro들이 야밤에 삼중창을 하면 진짜 골목이 다 떠나갑니다. 동네에 얌전히 있던 개들까지 짖어대는 파급 효과...
급기야 밤에 일 나갈때마다 개를 데리고 동물병원에 맡기는 조건으로 계약 유지하기로 했네요 (일 끝나고 새벽에 들어올떄 개 찾아옴)
이 언니는 나가요 해서 번돈 대부분을 개한테 쓰는 것 같았어요..
맨날 동물병원가고 미장원 데려가서 꾸미고 염색하고 지지고 볶고...
개가 아프다고 .. 개가 컨디션이 안좋아서 돌봐줘야 한다고 일 못나가는 경우도 종종 있고..
저도 개 좋아하긴 하는데 이건 좀 너무 심한 듯 ... 애정이라기 보다 집착..?
결국은 몇달 안살고 개들을 위해 더 좋은 환경이 있는 집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개ㅅㄲ들이 이빨로 문지방 다 갉아놔서 보증금 뺄 때 엄청 싸우고 티격태격 했네요.
지금도 그렇게 개 좋아하는지 .. 개 좋아하는 환경 찾아 어디까지 이사가셨는지 궁금하네요.
5. 3남 4녀의 생계를 책임지는 소녀 가장 언니
논현동 살면서 가장 잘 되기를 바랬던 언니
집이 전라도 어디 바닷가 깡촌인데 3남 4녀의 장녀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일하시다 허리를 심하게 다쳐서 드려 누우셨는데 완치가 어렵다나 힘들다나 했습니다.
원래 공장에서 일했는데 어머님 다치면서 병원비도 많이 들고 공장 월급으로는 가족들 생계가 어려워지자 서울 상경해 나가요 시작하신 마음씨 착한 언니
엄마 병원비랑 애들 학비 자기가 챙겨야 한다고 악착같이 돈 벌어서 다 집에 송금하던 언니
그러면서도 월세, 전기료, 가스료 등 공과금 납부는 한번도 미룬적이 없는 언니
(보통 월세 연체도 많고 전기, 가스 납부료 미뤄서 끊어지는 경우도 다반사 입니다)
돈 아낀다고 화장도 머리도 네일도 직접 하고 옷이나 장신구도 별로 안사고 밥도 삼시 세끼 다 직접 집에서 해먹던 언니
어머님이 기특하고 안쓰럽다고 맛난 반찬 만드시면 조금 덜어서 종종 가져다 주시기도 했습니다.
삼년 ? 좀 넘게 있다가 애들이 좀 커서 자기 앞가림은 어느정도 할 수 있고 어머님 병세도 많이 호전되어 병원비도 많이 줄어서 이제 나가요 그만하고 돌아가서 다시 공장 다닌다고 인사 왔을때 저희 어머님이 꼬옥 안아주시면서 그동안 고생 많았다고 꼭 행복하게 잘 살라고 당부하셨던 기억이 납니다.
(저도 꼬옥 안아드리고 싶었으나 그냥 마음만...ㅎㅎ)
지금은 시집가서 애 낳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겠죠 ? 언니는 꼭 그래야해요 ...
6. 이건 우리들만의 비밀이야
이 언니는... 스킵하도록 하겠습니다.
재밌게 읽으셨나요 ?
이 밖에도 뭐 여러 언니들이 많았는데 제가 글재주가 짧다보니 표현의 한계에 봉착해 이쯤에서 줄이고자 합니다.
아주 오래전 기억이다 보니 과장도 있고 왜곡도 있겠지만 저희 집에서 사시던 나가요 언니들에 대한 잡썰 이였습니다.
5번 언니는 어떻게 지내시는지 궁금하네요. 꼭 행복하게 잘 살고 계셨으면 좋겠습니다 ~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