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뽕들이 보검처럼 들고 오는 것이 아래 1711년 박석창 지도임.
클릭하면 크게 보임.
맨 밑에 보면 우산도를 그려 놓고 이렇게 써놨음.
"해장죽전 소위 우산도"
우산도에 해장죽이라는 대나무 밭이 있다고 기록해놓은 것임.
그래서 우산도가 독도가 아니라고 함. 독도엔 나무 밭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임.
그런데 지금도 독도에는 나무 밭이 있음. 괴불나무라고. 아래는 독도의 괴불나무 군락 사진임.
또 사철나무라는 것도 있음. 이건 천연기념물 지정도 됐음.
보다시피 어느 정도 밭을 이뤘지.
또 일본측 기록에도 독도에 대나무가 있다는 기록이 있음.
1877년 작성된 태정류전을 보면 독도에 대나무가 드물게 있다(竹稀ナリ)는 기록이 있음.
혹자는 "드물게 있는데 어찌 밭이냐?"라고 묻는데, 드물게 있어도 밭이 될 수 있음.
아래는 1794년 강원도 관찰사 심진현이 정조에게 올린 울릉도 보고서인데, 이를 보면 알 수 있음.
정조실록 40권, 정조 18년 6월 3일 戊午 9번째 기사
二十五日到長作地浦, 谷口果有竹田, 非但稀?, 擧皆體小。
25일에 장작지포(長作地浦)의 계곡 어귀에 도착해보니 과연 대나무 밭이 있는데, 대나무가 희소할 뿐만 아니라 거의가 작달막하였습니다.
보다시피 대나무가 드물게 있는데 대나무 밭이라고 하고 있지. 태정류전과 한자도 같음. 드물 희(稀).
(여기서 장작지포는 오늘날 울릉도 사동임)
애초에 수풀 林도 아니고 밭 田이니.
암튼 그래서 해장죽전이란 말 가지고 독도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것임.
그리고 일뽕들이 문제인게, 저 해장죽전이란 말만 문제 삼지 울릉도 본토의 지명은 고의적으로 외면하고 있음.
우산도 바로 위에 보면 이렇게 쓰여져 있음.
각석입표소
선박소왜선창 민인가거처
해석하면
돌을 깎아 표지를 세운 곳.
배가 정박하는 곳. 왜의 선창. 백성이 거주할 수 있는 곳.
그리고 그보다 더 우측엔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음.
선박소위저전동 민인 가거처
해석하면
배가 정박하는 곳. 저전동이라 이른다. 백성이 거주할 수 있는 곳.
여기서 돌을 깎아 표지를 세웠다는 것은 박석창이 세운 비석을 의미하는데,
이 비석을 세운 곳은 오늘날 도동항임. 울릉도 동남쪽에 위치한 항구.
여기가 독도와 최단거리 지점이라서 여기서 배가 출항, 독도를 관광함.
도동항에선 오늘날의 죽도는 안 보임.
저전동이라는 곳은 오늘날 저동항을 의미함.
도동항보다 북쪽에 있는데, 오늘날 죽도는 도동항은 물론 저동항보다도 북쪽에 위치해 있음.
즉 박석창 지도에 따르면 우산도의 위치는 오늘날 죽도가 도저히 될 수 없는 것임. 저동항 보다도 밑에 있으니.
일뽕들은 이런 건 무시하고 그냥 우산도의 모양만 보거나, 해장죽전 같은 자기네 입맛에 맞는 글만 해석함.
여기에 속아 넘어가면 안 될 것임.
덧붙임
조선시대 울릉도 지도를 보면 하나 같이 도동항과 우산도를 울릉도 정동향 or 살짝 동북쪽에 그리고 있는데,
이는 나침반에 근거한 자기 방위를 썼기 때문임.
나침반이 가리키는 북쪽은 실제 북쪽보다 약간 기울어져 있어서 동남쪽이 정동향이 되는 문제가 발생하는데,
각종 울릉도 지도에선 나침반 기준으로 방위를 설정했기 때문에 우산도가 울릉도 동남쪽이 아닌 정동향 아니면 약간 동북에 위치한 것임.
하지만 이들 울릉도 지도를 보면 하나 같이 우산도 바로 왼쪽 or 위 지점에 각석입표라고 적고 있는데,
결국 도동항 옆에 우산도가 있다고 써놓은 것임.
일뽕들은 이 기록은 싸그리 무시하고 종이 지면상 동쪽 or 동북쪽에 있으니 오늘날 죽도라고 주장하지.
그 우산도에 산이 그려져 있는 건 또 싸그리 무시하고.(죽도엔 산이 없음)
암튼 이들 울릉도 지도를 실제 방위에 맞추어 보려면 시계방향으로 30도 정도 돌려서 봐야 함.
그렇게 보면 우산도가 전부 동남쪽에 위치한 걸 알 수 있음.
참고로 울릉도에서 나침반으로 방위 확인하는 것은 일본측 기록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죽도도해사건기(竹島渡海事件記)에 수록된 하치에몬 공술기록을 보면 울릉도에 상륙해서 나침반으로 방위를 확인하는 내용이 나옴.
끝.
0/2000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