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지에서 이제 막 대학교 입학하고 기숙사 생활하던 3월 중순쯤 밤9시에 엄마한테 전화가 왔음
무심코 전화를 받는데 목소리가 엄마가 아니라 다른사람이여서 당황했는데 더 당황하게 하는 말을 들었다
"여기 oo마트인데 너희 엄마가 쓰러지셨어 근데 너희 아빠가 전화를 또 안받는데 아빠랑 같이 있니?"
엄마가 일 마치고 집들어가기전에 아파트상가에 있는 마트에서 장보고 들어갔다가 쓰러졌다는얘기를 들음 순간 심장이 개빨리뛰어짐.
정신차리고 바로 아빠한테 전화하니까 연결음이 좀 길어지다가 아빠가 받았음.
받자마자 아빠한테 "아빠 oo마트에서 엄마가 쓰러졌다고 마트 사장님이 전화왔어 얼른 좀 가봐"
아빠는 피곤해서 일찍 잠들어서 전화를 못받았었더라.
그렇게 초조하게 기다리면서 시간이 좀 지났을까 아빠한테 전화가 왔음.
일단 근처 의료원으로 이송했고 현재 진료중인데 큰병원으로 가야할거같다고 말을했음.
본가가 지방이라 근처에 큰병원을 갈라면 40분정도를 가야했음.
다음날 아빠한테 전화받으니 엄마가 뇌출혈로 쓰러졌다는걸 들었음. 새벽에 큰병원으로 가서 수술은 잘됬고 중환자실에 있다고했음. 엄마가 스트레스때문에 쓰러졌다고 하심. 그래서 나는 주말에 병원으로 가겠다고 했지.
그렇게 주말이 오고 나는 아침일찍 버스타고 엄마가 있는 병원으로 갔음. 가면서 네이버에 뇌출혈 검색해서 ㅈㄴ 찾아봄.
그때가 코로나에 심했었는데 면회도 하루에 2번인가1번인가 기억이 잘 안나긴하는데 좀 빠듯했음. 원래 중환자실은 이런건지 잘 모르겠다.
중환자실 들어가기전 홀? 같은데서 아빠 만나서 얘기를 좀 했음.
" 엄마가 지금 아무말도 못하고 기억이 없어"
솔직히 나는 이때까지 막 그렇게 심각하다 이런생각이 없었음. 그렇게 마스크를 끼고 중환자실로 입구를 들어가고 또 그 안에 입구 하나를 더 거치니까 엄마가 누워있었음. 근데 엄마의 머리는 다 밀려있었고 머리에는 과일 배 흰색 포장지같은걸 쓰고있더라. 그러면서 눈을 뜨면서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음. 그 모습을 보니까 그냥 눈물이 났음. 진짜 울 생각 1도 없었는데 그냥 울음이 터져나왔음. 떨린 목소리로 엄마를 부르는데 엄마는 계속 천장만 바라보고 있음. 늘 엄마를 부르면 "왜" 라는 말을 하시던 엄마가 이젠 아들이 왔는데도 나를 못알아본다는게 진짜 너무 가슴이 아프더라. 진짜 주저없이 울면서 마스크안에는 눈물,콧물로 젖어가고 있었다.
2주정도 지나니 엄마가 일반병실로 옮겼다고 했음. 상태가 좋아져서 내려갔다는데 그래도 멀쩡하진 않은신가봄.
그래도 이제 중환자실보단 만날 수 있는게 편하니까 다행이였음. 그래서 나는 또 엄마를 보러 갔지.
병실 들어가기전, 앞에서 이번엔 울지말아야지라고 다짐하고 들어갔음. 역시나 또 울음이 터져버렸다. 언제쯤 익숙해질란가..
그래도 그때보단 덜 울었다. 왜냐면 이번엔 엄마가 나를 알아봐주었거든. 하지만 아빠가 옆에서 말을 하더라
"아직 엄마가 정신이 오락가락해. 사람도 못알아볼때가 있고, 움직이는것도 힘들고, 말하는것도 엉성해. 그리고 엄마가 휴대폰 달라하면 절대 주면 안돼"
아빠가 잠시 자리를 비웠을때 엄마가 휴대폰으로 외삼촌한테 자꾸 전화를 한다고 들었음. 그래서 아빠는 엄마 휴대폰을 숨겨놨음. 나는 왜그런가 하고 생각했고 엄마랑 대화를 하면서 이상하길래 엄마한테 물어봄. "엄마 지금이 몇년도야?"
"1986년" "...? 엄마 지금 몇살이야?" " 중학생" 엄마는 지금 본인이 중학생이라고 생각하고있었음. 외삼촌한테 전화하는것도 엄마가 2남1녀중 막내인데 외삼촌들이 많이 애껴주었나봄. 그래서 그때 기억으로 생각하고있나봐. 엄마가 자꾸 외삼촌한테 전화해달라고 해서 난 휴대폰 없다고 거짓말도 했음. 엄마의 어리광부리는 모습이 때로는 슬플때가 있었다.
점차 시간이 지나면서 엄마 상태도 많이 좋아지고 혼자서도 조금씩 움직이는게 가능해짐. 몇달동안 밖에도 못나갔었는데
마침 날씨도 좋으니까 엄마랑 산책하기로함. 병원에 넓은 테라스? 같은게 있어서 햇살도 잘들어오는 곳에 갔음. 그래도 걸어서는 못가고 휠체어를 타고 가심. 내가 휠체어를 끌어줄거란 날이 오는건 상상도 못했는데..
그렇게 테라스 나가서 엄마랑 팔짱끼고 조금씩 걸어나가는데 문득 엄마랑 언제 팔짱을끼고 걸었는지가 기억도 안나더라.
내가 크면서 이런것도 잘 안하게되고, 엄마랑 단둘이 산책을 하던때가 언제인가.. 나는 반성을 하게되는 시간이었다.
엄마가 점점 호전되는게 눈에 보이니까 너무 좋았고 엄마의 머리카락은 얼른 자랐으면 좋겠다.
그로부터 한달 좀 지나니까 엄마가 퇴원을 하게되었음. 그래도 엄마는 이제 매일 약을 먹어야하는 사람이 되어버림.
엄마 퇴원 선물로 비니 선물을 해줬음. 머리가 더 자랄때까지 쓰고 다니라고. 그래도 엄마가 기억이 많이 돌아오고 했지만 가끔씩은 기억을 못할때가 있음. 내가 밖에서 친구 좀 보다가 집에 들어가는데 집앞에 엄마가 문앞에 서있길래 여기서 뭐하냐 했더니만 비밀번호가 기억이 안난다더라. 그때 또 울뻔했다. 난 울보였나봄. 엄마 아빠랑 오랜만에 집에서 밥도 먹고 평소엔 집안일을 안하던 내가 이제는 내가 다 하게되더라. 엄마의 뇌출혈 원인은 스트레스였다는데 나 때문이였을까 라는 생각도 들고 내가 평소에 엄마한테 어떻게 했는지 나 자신을 돌아보게 되는 생각도 가지게됨. 이제는 앞으로 엄마한테 잘해줘야겠다.
이제 6년정도 지났는데 지금은 상태가 매우 좋음. 그래도 아직까지 병원에서 약을 받아오심. 물론 머리도 많이 자라셨고.
나는 아직도 엄마를 중환자실에서 처음으로 봤을때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고 생각만하면 울컥함. 언제 한번은 꿈을 꿨는데 엄마가 다시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꿈을 꿨음. 재발해서 다시 누워있는 꿈이였는데 꿈속에서도 ㅈㄴ울었다. 너무 울었는지 깨버렸는데 내 볼 옆으로 눈물이 흐르고 있었음. 난생처음이였다. 난 엄마가 쓰러지셨을때 행여나 마트에서가 아닌 어두운 밤길에 쓰러졌다면, 진짜 난 영영 못볼뻔했다. 다시금 다행이라고 생각함. 그때 마트 사장님께서도 조치를 잘해주셔서 아직도 난 감사한 마음으로 살고있고 또한 직접 찾아뵙고 감사하다고 전해드렸음. 지금은 아파트를 벗어나 시골에서 주택짓고 마당엔 귀여운 강아지와 고양이 두 마리랑 함께 지내고 있음. 얼마전 엄마랑 얘기를 하니까 쓰러지기전의 기억만 나고 병원에서 있었던 기억은 하나도 안난다고 하더라. 어쩌다보니 집에 왔을때의 기억만 있다고 했음. 이제라도 좋은기억만 남기셨으면 좋겠고 아빠랑 엄마랑 오래오래 사셨으면 함.
내가 이렇게 두서없이 긴 글을 적는 이유는 그냥 적고 싶었음. 평소에 엄마한테 잘할걸, 엄마한테 못된 말 하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지고 후회스러워지는 감정들을 느꼈음. 있을때 잘하자. 앞으로도. 이 엉망진창 글을 읽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지만, 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에게 고맙습니다. 전 뭘 바라면서 적은게 아닌 그냥 적고싶었음.
부모님께 고맙고, 사랑한다고 말을 마지막을 한게 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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