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소련 사진작가가 수용소에서 찍은 사진。
1945년 1월 찍은 사진으로 한명의 생존자가
사망자의 안경을 한군데 모아놓은 사진。
수용소로가는 기차안의 유태인。(1944년 여름)
1944년 5월 27일 찍은 사진으로 독일병사가 수용소에서 유태인들을 남, 여로 분류하고 있는 사진。
1943년 폴란드의 유태인 거주지에서 일반 시민들이 독일군에게 투항하는 모습。
한명의 아기를 안고 3명의 자녀를 거느린 부녀자가 독가스실로 가는 사진
한무리의 유태인들이 독가스실 앞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이 사진은 기차에서 방금내려 음식과 물, 위생설비가 전혀없는 야외 대기실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 저들은 이사진을 찍은지 얼마지나지 않아 살해되었다。
의학 실험을 당한 유태인 아동들
한 협곡에서 독일군이 부녀자 집단 살해를 하고 난뒤 아직 살아있는 부녀자에게 총을 쏘고 있는 모습
오스트리아 Ebensee수용소에서 굶어죽기 일보직전에 있는 유태인들. 이 수용소는 과학실험을 하는 수용소이며 1945년 5월 7일 미국 80사단에 의해서 구출됐다。
자기 죽은 동포들을 위하여 땅을 파고 있는 사진
Buchenwald 수용소에 수용되어 있는 소련, 폴란드, 네덜란드 국적의 사람들
평균체중이 30Kg을 밑돌고 있다。
Weimar수용소에서 시체들을 트럭에 태워 운반하고 있는 사진이다. 이들 시체들은 모두 화장되었다. 이 수용소는 1945년 4월 14일 미 3사단에 의해 해방되었다。
오스트리아 Linz의 Muhlhausen수용소,수용자들은 인근의 채석장에서 노동을 하였으며 마지막에 몸이 허약해져 일을 할수 없으면 살해되었다. 이 수용소는 1945년 5월 12일 해방되었으며 해방후 시체를 매장하기 위해 옮기고 있는 사진이다。
Namering수용소,
한명의 독일 부녀자가 살해당한 800여구의 시체들 옆을 지나가면서 놀라는 사진。
Lager Nordhausen수용소에서 처형된 시체들
수용소에서 마치 산과 같은 쌓아 놓은죽은이들의 뼈
시체들을 쌓아놓은 구덩이(일명 만인의 구덩이)
살아있는 상태에서 불에 태워 죽은 시체
얼마전에 해외유학생이 만들었다는 동영상을 보고
참 느낀 게 많았습니다.
특히나 양국의 발전을 위해 이젠 일본을 용서하자,
그리고 일본 천황에게 두번씩이나 고개숙여
인사하는 우리나라 지도자의 모습은
저 뿐만이 아니라 많은 국민들의 가슴을
아프게 하였지요.
유학생의 예처럼 저런 희생을 겪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만약 독일을 용서하자고 했다면?
그 사람 목숨부터 걱정되는 상황일겁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대한민국은 유태인 대학살의
아픔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닌 아픔일까요?
비록 많은 분들이 희생당했지만 독일은 이스라엘의
땅 한번 밟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우리의 희생은 어떠했나요.
한글을 뺐기고, 이역만리땅 일본땅에 징용으로
끌려가고, 창씨개명을 당하고, 쓸만한 자원을 몽땅
착취당하고, 중국, 일본에서 마루따 생체실험을 당하고
우리의 할머니들이 하루 30회이상 성행위를 강요당하는
위안부로 끌려가고... 몇만명이던 분들이 이젠 87분만이
생존해 계십니다.
원자폭탄이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떨어지지 않았다면
제 이름은 다나까나 야마구찌일지도 모르겠네요.
앞으로 일국의 지도자로서 좀 더 올바른 역사관에
입각하길 바랍니다. 그리고
개념있는 역사관은 몇푼 더 벌 수 있는 얄팍한 상술을
배제해야 가능하다는 것을 꼭 명심하시길 바랍니다.
앞으로 정말 멋진 모습 보여주길 기대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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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친구를 만나면 인사를하듯,어른을만나면 인사를하듯...
내가 볼땐 "투산IX" 로 추정됨
좋은 자료 너무 감사합니다
일본은 어떤경우에도 용서하면 안됩니다
아픈 역사는 또 다시 반복될 것 입니다
미래가 중요하지.
앞으로 태어날 너희들의 자녀들과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미래를 선택해라.
신고한거 같습니다 !!!
흠...... 생각이 트이신건지... 아님 아무것도 모르시는건지 ㅡㅡㅋ 답답허네요
일본을 미워할려면 독일과 구소련의 만행사진을 올리면 됩니다.
뭐든지 가장 잔인한 사진을 올리고 일본놈 나쁜놈 해도
전부 일본과 이명박을 일제히 원수로 규정 해 주는 보배~~
보배 참 쉽죠~~~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