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쌍용 해고자들을 생각하며, 티볼리와 그 이후 디자인 컨셉을 보며 쌍용은 망할 것이 뻔하겠기에, 이는 다른 어떤 것도 아닌 디자인 때문임을 자동차 업계뿐만 아니라 타 업종에서도 타산지석으로 삼았으면 하는 뜻이다)
필자는 올해로 한국 나이로 50이 된다. 우리 나라가 '디자인'의 '디'자가 뭔지도 모를 때, 꿈이 '산업디자인'이었고, 그걸 배우러 독일까지 갔었던 사람이다. 망발이 될지는 모르지만, 그 이유는 이태리, 독일, 프랑스, 미국 등 당대 최고의 산업국 디자인을 20대 초반부터 비교해 본 결과, 미래는 독일 디자인이 세계를 제패할 것으로 예상을 했었다. 35년 전의 어린 내 눈에도, 새로운 디자인인데 뭔가 오래된 것 같고, 그러면서도 눈에 거슬리지않고, 보면 볼 수록 고급스럽고 정이 들고..., 자동차 뿐만 아니라 다른 산업 전반의 디자인이 그렇다. 명품이 판치는 이탈리아의 디자인, 프랑스의 알 수 없는 예술적 디자인(?)이, 산업제품의 디자인에서 독일 앞에서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은, 디자인 철학과 관점, 에고노믹스의 질적 차이 때문이다.
필자는 아무렇게나 파워포인트, 워드를 만들어오는 직원들에게 네 문서 디자인 하나 때문에 회사가 망할 수도 있다고 늘 충고를 마지 않는다. 그러면서 좋은 디자인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답으로, 넌 어떤 여자(or 남자)가 너의 가슴을 뛰게 만드느냐고 되묻는다. 본인에게는 미안하지만 '김태희'를 보는 남자들은 어떤가? 먼 발치에서 한 번 본적이 있는 데, 보는 것 만으로 그것도 중년 남자가 '와'하는 감탄을 하게된다. 여자는 남자 장동건을 보면 그렇지 않을까? 그 사람의 성격이나, 장단점을 몰라도 일단 멋있으니 가슴이 뛴다. 그런데, 어떻게 멋있는가가 더 중요하다. 둥그런 얼굴형에 눈, 코, 입 등이 정말 알맞는 비례로 잘 맞춰져 있다. 소위 '누가봐도 멋진 얼굴이다' 100년 전 사람이 봐도 멋있고, 다른 인종이 봐도 예쁘다(다소간의 호불호는 있겠지만..) 뭐, 다그렇다는 건 아니다. 반면, 약 10%의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 옛날 유행하던 서부영화는 존이나 클린트 같은 주인공과 그에 맞서는 악당이 있다. 90%는 주인공을 좋아하지만, 10%는 악당을 멋있다고 하는 사람도 있다.
산업디자인도 이와 똑 같다. 10%가 아닌 대부분의 사람이 보기에 멋져야 한다.
사람을 자꾸 비유하여 미안하지만, 일단 예쁘고 몸매가 좋으면 갈망의 대상이 된다 (최소 모델이라도 한다). 또 탁월하게 멋지면, 성질이 조금 안좋아도 고쳐가며 데리고 산다. 어떤 여자는 남편이 굉장히 멋진데 바람둥이다. 저 사람은 나 혼자 감당하기 어렵다고 자위하며 사는 걸 본다. 이처럼 디자인이 멋지면 성능은 다소 떨어져도 감내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이다. 물론, 적당히 예쁜 사람은 심성이 좋고 유머가 많은 사람에 댈게 아니다. 오래되면 겉모양보다 내면이다. 그래서, 디자인이 다소 아쉽더라도 오랫동안 성능이 인정되는 제품은 지속적으로 사랑을 받는다. 하지만 내면이 (성능이) 엇비슷 하다면, 역시 외모(디자인)이 나은 쪽이 앞선다.
필자는 대우자동차의 프린스가 나올 때부터, 대우자동차는 머잖아 망한다고 얘기하고 다닌 사람이다. 르망이 엑셀에 비해 성능은 탁월했지만, 안팔린 것은 엑셀보다 못생겨서이다. 여기서 못생겼다는 것은 '눈에 친근감있게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다. 그 후 프린스라는 동일 컨셉의찢어진 눈, 둔한 몸뚱이 제품이 나올 때, 이런 것들로 제품을 가져가는 실무진과 그걸 추인하는 경영진이 있고서는 안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느꼈다. 그 이후 '레조'가 나왔을 때는 처음 본 순간 허탈해서 낄낄 거리고 웃다가, 주변 사람들에게 무안을 당한 적도 있다. 그렇게 대우는 없어졌다. 대우차의 쇠망에 대해 사람들은 뭐라할 지 모르지만, 내가 내리는 진단은 디자인,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쌍용으로 돌아가서, 중세 유럽의 갑옷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카이런 등의 전작들과, 세계에서 아주 못생긴차 중의 하나로 뽑혔다는 로디우스 등에서 망조가 든 것이다. 누구도 그런 디자인은 좋아하지 않는다. 그 가격에 포르쉐의 성능을 보여주지 않는 한...
큰 댐이 무너지는 데 구멍하나로 족하듯, 대개 그런 경우는 희안한 시각(성향)을 가진 한두명이, 중요한 위치에서, 똥같은 논리들을 펴며 프로젝트를 망조로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이 보통 학력, 경력이 있다. 근데 파보면 자신이 뭔가를 히트시켰는 지는 불명하다)
그런 분들이 수준이 얼나 높은지는 모르겠고 얼마나 배웠는지는 모르겠는 데, 차를 살 사람과는 완전히 다른 그것임이 자명하다.
(불행히도 내가보기엔 카이런의 재앙을 만든 사람들이 아직 쌍용에서 결적적인 역할을 하는 것으로 티볼리 디자인을 보며 직감한다)
전 세계적으로 굴지의 기업을 일으킨 사람들 중에는 학력/경력 등이 일천한 사람들이 매우 많다. 반면, 아이비리그 비지니스 스쿨을 졸업하고 큰 기업을 일구어낸 사람은 손에 꼽힐 정도로 적다. 지식과 학력의 차이를 고려하면 후자가 당연히 압도적이어야 하는 데, 세상은 그렇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나온 말이 '사업적 통찰력'이다. 배웠건 못배웠건, 똑똑하든 멍청하든 관계없이 사업적 통찰력이 있어야, 사업에서 성공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디자인도 이와 똑 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눈과 마음을 사로잡는 디자인은 대개 그림잘그리는 것과 무관하기 때문이다.
글이 너무 길어져 1차의 마감으로 필자가 최근 본 가장 훌륭한 디자인을 하나 올려본다. 연필을 잡아본 사람이라면 이런 반듯반듯한 거는 디자인이라고 생각도 안될만큼 쉬운 선들로 이루어져 있다. 티볼리와 차이를 음미해보라(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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