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 늘어난 다운포스, 43㎏ 줄어든 몸무게, 37% 개선한 공기 흐름 효율. 람보르기니 우라칸 STO의 소개 자료는 성능을 암시하는 ‘숫자’로 빼곡하다. 뭐든지 예습이 중요하다고, 행사 장소인 인제 스피디움 도착 직전까지 각종 수치를 달달 외웠다. 그러나 머리로 먼저 이해할 필요가 없었다. 우라칸 STO는 자신의 실력을 운전자가 온몸으로 깨닫도록 만든다.
글 서동현 기자
사진 람보르기니, 서동현
지난 2020년 말, 람보르기니가 우라칸 STO를 공개했다. STO란 ‘슈퍼 트로페오 오몰로가타(Super Trofeo Omologat)a’의 약자. 레이스카의 경기 출전 기준(Homologation)을 충족하려고 만든 일반 도로용 모델이다. 최근 데뷔한 우라칸 GT3 에보 2가 바로 우라칸 STO 기반 경주차다. 파워트레인과 섀시, 공기역학 성능 부품 일부를 함께 쓰는 쌍둥이다.
람보르기니의 ‘트랙 포커스’ 모델 등장에는 한 가지 특징이 있다. 모델 수명 중반을 넘으면서 주행 성능을 극한으로 끌어올린다는 점이다. 여기엔 람보르기니 모터스포츠 부서, 스콰드라 코르세(Squadra Corse)의 노력이 깃들었다. FIA의 ‘GT3’ 클래스와 우라칸 원메이크 레이스 ‘슈퍼 트로페오’에서 쌓은 모터스포츠 기술을 우라칸이라는 그릇에 가득 담아냈다.
①익스테리어
우라칸 STO의 얼굴은 ‘코팡고(Cofango)’라고 부른다. 이탈리아어로 각각 보닛과 펜더를 뜻하는 코파노(Cofano), 파라팡고(Parafango)의 합성어다. 실제로 보닛과 범퍼, 앞 펜더를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 한 덩어리로 찍어냈다. 잠금을 풀면 애스턴 마틴의 클램 쉘 후드처럼 코팡고 전체가 앞으로 기운다. 역사적인 미드십 수퍼카, 미우라를 오마주한 디자인이다.
중심에는 거대한 숨구멍 두 개가 자리했다. 앞 범퍼로 들어온 공기를 배출하는 통로다. 머리 위로 흐르는 공기를 유도하고, 다운포스를 만들어 앞바퀴 접지력을 올리는 중요한 역할을 맡는다. 펜더 위 에어 벤트는 휠 하우스 속 과도한 압력을 낮춘다. 헤드램프를 빼면 우라칸 에보와 같은 부품은 찾아볼 수 없다.
뒷모습은 훨씬 과격하다. 엔진룸 꼭대기에 큼직한 공기 흡입구를 달았다. V10 엔진이 내뿜는 열기를 식히기 위한 냉각장치다. 그 뒤로 F1이나 르망 경주차에서 볼 법한 수직 핀을 세웠다. 코너를 지날 때 핀 양쪽으로 기압 차이가 발생하는데, 이를 통해 코너링 안정성을 높였다. 엔진 연소에 필요한 공기는 흡입 저항을 최소화한 뒤 펜더 나카(NACA) 덕트로 공급한다.
리어 윙은 3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자동은 아니고, 별 렌치로 나사를 풀어 직접 바꿔야 한다. 각 위치는 최대 다운포스의 크기를 좌우한다. 가령 ‘낮음’ 단계에서 324㎏, ‘중간’ 단계에서 363㎏를 만든다. ‘높음’ 단계는 무려 420㎏의 힘으로 뒷바퀴를 짓누른다. 이와 같은 에어로 다이내믹 설계로, 우라칸 STO는 퍼포만테 대비 53% 강한 다운포스를 챙겼다.
‘경량화’도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 차체 외부 패널 75% 이상은 CFRP로 빚었다. 특히 리어 펜더는 항공 우주 분야에서도 쓰는 ‘탄소섬유 샌드위치 기법’으로 만들었다. 탄소섬유를 25% 적게 넣지만 강성은 똑같다. 네 발엔 알루미늄보다 가벼운 마그네슘 휠을 끼우고, 앞 유리 무게도 20% 내렸다. 덕분에 STO의 공차중량은 1,339㎏로 퍼포만테보다 43㎏ 가볍다.
②인테리어
실내는 전투기 조종석 느낌이 물씬하다. 새빨간 커버로 감싼 시동 버튼과 타코미터를 넓게 펼친 디지털 계기판, 차가운 금속 시프트 패들이 눈길을 끈다. 탄소섬유로 뼈대를 짠 버킷 시트는 쿠션감이라고는 1도 없다. 대신 표면 굴곡이 부드러워 몸에 딱 맞는다. 엉덩이 위치가 극도로 낮은데, 의외로 시야는 좋다. 보닛이 짧고 펜더가 솟아 있어 앞머리 길이와 좌우 폭을 가늠하기 편하다.
인테리어도 다이어트를 피할 수는 없었다. 고급스러운 가죽은 가볍고 튼튼한 알칸타라로 바꿨다. 도어 트림은 당연히 CFRP. 촘촘한 탄소섬유 결이 그대로 드러나며, 클리어 코트조차 씌우지 않았다. 그 가운데에는 알칸타라 스트랩과 직물 도어 래치를 달았다. 푹신한 바닥 매트도 사치품이다. 발을 디디면 ‘텅’하며 속이 빈 듯한 소리가 난다.
③ 파워트레인 및 섀시
파워트레인은 우라칸 에보 RWD와 같다. V10 5.2L 가솔린 자연흡기 엔진을 시트 뒤에 얹고, 7단 듀얼클러치 변속기를 통해 뒷바퀴를 굴린다. 최고출력은 30마력 오른 640마력. 최대토크는 0.6㎏·m 키워 57.7㎏·m다. 0→시속 100㎞ 가속 시간은 정확히 3초. 최고속도는 15㎞/h 줄었는데, 늘어난 다운포스에 따른 결과로 이해할 수 있다.
단순히 출력만 올리진 않았다. 힘을 다루는 자세가 다르다. 우라칸 에보의 주행 모드는 스트라다-스포츠-코르사 세 가지. 반면 우라칸 STO는 STO-트로페오-피오자로 나눴다. 그중 기본 세팅인 STO 모드는 우라칸 에보의 스포츠 모드와 같은 성격이다. 즉, 데일리 수퍼카보다 한 단계 높은 수준으로 달리길 원한다. 심지어 젖은 노면을 위한 피오자(PIOGGIA) 모드는 비 내린 서킷을 빨리 달리려고 마련했다.
④주행 성능
행사의 주인공은 우라칸 STO지만, 람보르기니 서울은 기본형 우라칸도 준비했다. 내가 시승한 순서는 우라칸 에보 스파이더 → 우라칸 에보 RWD → 우라칸 STO. 덕분에 구동 방식에 따른 주행 특성 차이는 물론, STO만의 차별화 포인트도 단번에 체감할 수 있었다.
사륜구동 우라칸으로 준비운동을 마치고, 두 번째로 우라칸 에보 RWD의 운전대를 잡았다. 사실 겁부터 먹었다. 610마력 미드십 후륜구동 수퍼카를 서킷에서 처음 휘두르는 날이었으니까. 그런데 우라칸은 생각보다 친절했다. 코르사 모드에서도 딱 재미있을 만큼만 꽁무니를 흔들었다. 앞바퀴 움직임은 AWD 버전보다 한결 가벼워 코너링에 짜릿함을 더했다.
대망의 우라칸 STO 차례. 피트를 나오며 주행 모드를 트로페오로 바꿨다. 스티어링 휠 6시 방향 스위치를 아래로 ‘딸깍’. 목청을 키운 엔진 소리가 헬멧을 뚫고 들어온다. 계기판도 분위기를 바꾸고, 변속기는 수동 모드로 들어가 오직 내 손끝에 의지해야 한다. 변속 시점을 알리는 계기판 속 파란 불빛을 예의주시하며 서킷에 진입했다.
4번 헤어핀 코너를 탈출하면서 부드럽게 가속. 눈 깜짝할 새 엔진 회전 한계인 8,500rpm까지 치솟는다. 한 눈 파는 순간 시프트 패들 조작 타이밍을 놓치기 쉽다. 변속 속도는 경이롭다. 기존 변속기보다 반응 속도를 한층 더 올렸다. 마치 레이싱 시뮬레이터처럼 패들을 당기는 순간 다음 기어를 문다. 손가락 움직임과 함께 변속 충격이 뒤통수를 두들긴다. 눈과 귀, 몸으로 느끼는 모든 감각이 평범한 양산차와 거리가 멀다.
더 인상적인 특징은 주행 안정감이다. 최고출력이 30마력 높고 공차중량도 가볍지만, 우라칸 에보 RWD와 달리 꼬리를 함부로 흔들어대지 않는다. 의도적으로 코너를 탈출할 때 가속 페달을 더 깊게 밟아 봤지만 결과는 같았다. 리어 윙이 만드는 다운포스의 효과가 상당하다. 코너를 하나씩 공략할 때마다 신뢰도가 오르고 자신감이 쌓인다. 서킷 초심자도 금세 적응할 수 있을 만큼 운전이 쉽다.
안정성이 뛰어난 이유는 주행 모드의 목적에서도 찾을 수 있다. 트로페오 모드의 목표는 서킷에서 가장 빠른 랩타임. 람보르기니의 자세 제어 장치인 ‘LDVI(Lamborghini Veicolo Dinamica Integrata)’가 타이어 그립을 잃지 않도록 섬세하게 개입한다. 앞 10㎜, 뒤 16㎜씩 늘어난 윤거와 뒷바퀴 조향 시스템이 자로 잰 듯 정확한 코너링을 돕는다.
허나 운전자의 모든 실수를 눈감아 주진 않는다. 제동할 때 하중이 한쪽으로 치우치면 곧장 뒷바퀴가 움찔댄다. 단, 공포보단 재미로 다가온다. 피드백이 솔직해서 좋다. 주행을 거듭할수록 ‘다음에는 브레이크를 더 확실히 밟아야지’라며 이미지 트레이닝하는 나를 발견할 수 있다. 트랙용 수퍼카와 조금씩 호흡을 맞추는 과정은 글로 다 풀어내지 못할 정도로 희열이 넘친다.
가속 성능보다 더욱 와 닿는 부분은 브레이크 성능이다. 우라칸 에보와 비교하면 훨씬 강력하다. 비밀은 디스크 소재에 있다. F1 기술을 빌려, 이전보다 열전도율을 4배 올린 브렘보 CCM-R 브레이크를 끼웠다. 최대 제동력은 25%나 개선했다. 체감 효과는 그 이상이다. 브레이크 페달에 발을 살짝만 올려도 땅을 움켜쥔다. 그리고 민감하다. 겨우 3바퀴 주행으로는 완벽하게 적응하기 어려웠다.
⑤총평
일반 우라칸과는 전혀 다른 경험을 선물한 우라칸 STO. 이 차를 타면 모터스포츠 분야의 경량화와 에어로 다이내믹, 브레이크 기술 수준이 얼마나 높은지 간접 체험할 수 있다. 그럼에도 정식으로 번호판을 달고 도로를 누빌 수 있다. 한 마디로 ‘올인원’ 람보르기니다. 맹렬한 V10 자연흡기 엔진 품은 트랙 맞춤형 수퍼카를 원한다면 우라칸 STO가 정답이다.
장점
1) 새로운 공기역학 설계로 얻은 다운포스
2) 여과 없이 들이치는 엔진 사운드
단점
1) 룸미러는 엔진 커버로 가로막혀 전혀 쓸모없다
2) 앞 범퍼가 조금이라도 깨진다면...수리 비용이 얼마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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