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부차기 실축은 훗날 어떻게 딛고 일어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1. 1994년 미국 월드컵 결승전
이탈리아 vs 브라질
이탈리아 마지막 키커 1993년 FIFIA 올해의 선수 수상, 발롱도르 수상, 월드 사커 올해의 선수 수상,
당시 세계에서 제일 비싼 선수였던 로베르토 바조
알다시피 마음 찢어지는 실축
2. 월드컵 끝나고 돌아와 기존 무릎 부상은 악화되고, 심적 슬럼프까지 겹치며
1994,1995 시즌을 끝으로 유벤투스 10번 델 피에로에게 빼앗기고
쫓기다 시피 AC 밀란으로 갔으나
카펠로, 사키 감독한테 푸대접 받고
1997,1998 시즌 중위권 팀인 볼로냐로 떠난다.
트레이트 마크인 말총머리도 싹둑 깎고
세리에A 득점 2위로 거듭나 부활
3. 평생 동료인 파올로 말디니의 아버지 체사레 말디니 감독이
1998년 프랑스 월드컵 앞두고 로베르토 바조 국가대표로 재발탁, 아주리로 컴백
델피에로가 10번 달고, 로비는 그 백업으로 18번 달고 출전.
조별예선 첫경기
당시 자모라노와 살라스가 이끌던 칠레 골든 제너레이션과 만나
후반 막판까지 2:1로 밀리던 와중에
로베르토 바조가 페널티 박스 안에 있는 칠레 수비수의 손에 일부러 맞춰 페널트킥 얻어냄.
체사레 말디니는 로베르토 바조에게 차라고 지시하고 뒤돌아서 안 쳐다봄.
로베르토 바조의 페널트킥 동점골로 겨우 대 칠레전 2:2
4. 98 프랑스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는 8강전에 만난 프랑스와 승부차기까지 갔는데
로베르토 바조는 이 때 1번 키커로 나와 성공시킨다.
그러나 2번 알베르티니, 5번 키커 디 비아조가 또 실축하며
이탈리아는 8강에서 탈락한다.
5. 세계적인 위스키 조니워커는 로베르토 바조의 이 4년 간의 여정을 광고로 촬영한다.
6. 그렇게 승부차기 악몽에서 해방된 로베르토 바조는
인테르에서의 2년을 마치고
선수 생활의 황혼기를 보내는 브레시아에서 2004년 은퇴하는데,
은퇴경기는 AC밀란과의 원정 경기.
밀란 주장 말디니의 환송으로
산시로에 모인 8만 관중들은
아주리와 세리에A를 이끈 이탈리아의 원조 판타지스타 로베르토 바조의 은퇴를 기립박수로 위로한다.
세리에A에서 원정팀 주장의 은퇴를 홈팀 관중들이 기립박수로 환송한건
로베르토 바조가 유일할 것이다.
7. 로베르토 바조의 15세 비첸자에서부터 30대 후반의 브레시아까지의 클럽 생활,
이탈리아 국대에서의 영광
그리고 그의 꿈과 도전 그리고 신화를 그린 영화가
지금 넷플릭스에서 개봉하고 있는 그의 영화다.
그가 그 실축으로 주저 앉았다면 그의 광고도, 그의 영화도, 지금까지 이탈리아에서 제일 사랑받는 축구 스타인 로베르토 바조는 없었을 것이다.
콜롬비아 선수는 자살골 넣고 피살당함
저 장면 아직도 기억이 나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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