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패망과 6.25의 발발
해방과 분단
일본의 패망으로 한반도는 해방을 맞이 했으나 곧바로 남북이 소련과 미국에의해 분단되었다. 그로 인해 한반도의 철도는 1945년 9월 11일부터 남북간 철도 운행이 중지되었다. 당시 한반도 총 연장은 6362km였고 남한은 겨우 2642km에 불과 했다. 또한 차량은 총 기관차 보유량 1166대중 겨우 488대였다.
1945년 12월 27일에 우리 기술력으로 제작한 SL "해방자호"를 운행했으며, 1946년 5월 남한에 있는 조선철도주식회사의 충북선(조치원 - 충주), 경동선(인천 - 여주), 안성선(천안 - 안성), 경남철도주식회사의 충남선(천안 - 장항벌교), 경기선(천안 - 장호원), 경춘철도회사의 경춘선(성동 - 춘천), 삼척철도주식회사의 삼척선(북평 - 삼척), 철암선(묵호항 - 철암)을 모두 국유화되어 운수부에 흡수된다. 또한 경성역이 서울역으로 역명을 변경하기도 했다.
1948년에는 8월15일 대한민국의 정부 수립기해 운수부를 교통부로 개편하고, 1949년 일제가 소흘히 했었던 동서 종관 철도의 건설을 서두른다. 또한 분단으로 인해 심각한 자원부족을 격었던 남한의 산업발전을 위해 산업철도인 영암선, 함백선, 문경선을 착공한다.
6.25 전쟁
남한에서 한창 철도 건설을 하고 있던 1950년 여름 북한은 전쟁을 도발하고 이에 철도는 전시체제로 변환, 교통부 청사에 수송본부를 설치한다. 하지만 수송본부는 6월26일 교통부 청사가 적기의 폭격으로 파괴되자 6월 28일에는 영등포, 30일 대전, 7월 14일에는 부산으로 이동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철도 직원은 철도를 지키며 객차 3354량과 화차 11755량을 동원하여 피난민 이백만명 이상을 수송한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하자 철도 복구대는 북상하면서 복구를 서둘러 10월 8일에는 서울 - 부산간 제 112열차를 운행하는데 성공한다. 또한 동월 25일에는 평양에 공작창 파견대를 설치하며, 11월 12일 서울 - 대동간의 열차운행에 성공한다. 전 국토가 처절한 피해를 입었던 6.25 전재을 통해 철도는 153명의 직원이 순직하고 기관차 61%, 객차 69%, 화차 57%, 공장설비 27%, 전력설비 56%, 교량 13%가 파괴되는 손실을 입었다. 하지만 UN군의 지원과 철도인의 노력으로 1951년 8월 1일 남한의 모든 철도는 정상운행을 시작한다. 또한 전쟁중이던 1952년 7월 15일 전쟁중이던 이때 한국 철도 사상 처음으로 디젤기관차 35량이 도입된다.
끊어진 한강철교
전쟁이후 경제의 발전
새로운 노선의 건설
1950년대는 전쟁의 피해 속에 잇다라 산업선을 개통하여 우암선, 울산선, 김포선, 장생포선, 옥구선, 사천선, 가은선, 영동선, 삼척발전소선, 태백선, 강경선, 충북선, 오류동선, 주인선을 차례로 개통시킨다. 그 후 60년대 70년대를 거처 경재개발 5개년 개획에 의해 황지선, 경북선, 정선선, 동해북부선, 능의선(현 교외선), 경전선, 진삼선, 경인복선, 광주선, 북평선, 문경선, 전주공업단지선, 광주공업단지선, 여천선, 포항종합제철선, 충북복선, 호남복선, 광주제철선등이 잇달아 건설되기 시작했다. 또한 이기간에 산업선 수송량 증가를 위해 중앙선, 영동선을 전철화한다.
능의선 개통식. 1961-07-10. (정부기록사진집5)
80년대에는 도시교통난 해소를 위해 경원선 복선, 안산선 복선전철, 과천선 복선전철을 건설하고 전라선 개량, 호남선 복선화, 경부선 복복선화, 경인 복복선화 공사를 계속한다.
신호, 설비등의 발전
건설분야는 50년대 삽과 공괭이로 하던 공사가 50년대 후반에 기계화 되기 시작하고, 60년대 미군장비의 원조로 덤프트럭, 컴프레셔등이 사용되기 시작한다. 또한 70년대에는 포크레인, 페이로더가 사용되며 80년대 90년대에는 15톤 트럭, TBM까지 사용하게 된다.
철도의 전화 사업도 계속되어 해방전에는 주요 역에서만 사용되던 전기가 1960~70년대 사이에 전용 고압배전선로를 신설하여 조명과 신호설비에 사용하게 되며 80년대 후반 무등역[無燈驛]이 사라지게 된다.
신호 설비는 과거에 사용되던 기계연동장치를 대신하여 1954년 전공계전연동장치, 1958년에는 전기계전연동장치로 대부분 교체된다. 또한 1968년 중앙선에 CTC가 사용되며, 70년대 중반에 수도권구간에 4현시 자동폐색신호기가 설치되기 시작된다. 그리고 1987년 주요구간에 5현시로 운영하기 시작하며 1994년 과천선, 분당선, 일산선에 ATC를 설치하여 운행한다.
1952년 최초로 디젤기관차가 한국철도에서 사용된 이후 1972년 6월 9일 전기기관차가 도입되어 운행되며 1979년 1월에는 우리 손으로 전기기관차를 제작하기도 한다.
아직도 현역인 8001호 기관차
철도의 수송
철도는 1960년대가지 화물수송의 80%, 여객수송의 50%를 분담하나, 70년도에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된후 여객의 25%. 화물의 52%를 수송한다. 80년대에 이르러 도로의 급격한 발달에 힘입어 도로수송의 비율이 급격히 늘어나 80년대 중반에는 여객의 21%, 화물의 40%를 담당하게 된다.
한국철도 100년사 - 철도청 - 요약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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