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2월 21일 - 09시 42분
지난 11월 초 국방부장관과 해병대사령관을 수행하고 우리 장병들이 땀 흘리며 평화·재건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 이라크의 아르빌·바그다드를 방문할 기회가 있었다.
이라크에 도착해 보니 예상보다 훨씬 더 열악한 환경에서 우리의 젊은 장병들은 강인한 군인정신으로 극복해 나가고 있었다.
이라크는 거의 모든 지역이 폭서·건조의 사막형 기후로 여름과 겨울, 밤낮의 기온 차가 심하고 하계(4~9월)에는 평균 최고 기온이 30~50도고 거의 비가 내리지 않으며 동계(10~3월)에도 평균 최고 기온이 25~35도로 400mm 정도 비가 내리는 곳이었다.
그렇지만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우리 자이툰부대는 3지대 방호 개념으로 철저한 부대 방어와 영외 임무 수행간에도 조직적인 시스템을 갖추고 운용되고 있었으며 장병들은 책임감과 자부심으로 가득 차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고 있었다.
부대에 도착한 다음 날 아침 국방부장관께서는 부대 장병들과 함께 자이툰부대 티셔츠(장관님 격려품)를 입고 아침 점호를 받으며 호흡을 같이 했다.
해병대사령관께서도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아르빌의 아침을 해병 중대 장병들과 함께 우렁찬 군가와 구호로 열며 열악한 여건 속에서도 훌륭히 임무를 수행하고 있는 해병대 장병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노고를 치하할 뿐만 아니라 숙소를 세밀히 관찰하며 장병들의 의식주를 점검했다.
한편 바그다드는 전운이 감도는 긴장 속에 있었다.
이라크 저항 세력의 테러와 공격이 지속돼 모든 장병은 항시 방탄 헬멧과 방탄복을 착용했고 각 검문소는 철두철미한 검문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지휘통제실은 시시각각으로 벌어지는 이라크 상황이 보고돼 대형 전자 현황판에 기록되고 상황 근무자들의 손놀림은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다국적군 사령관은 우리나라가 자이툰부대를 파병, 이라크의 평화·재건에 일익을 담당하고 있는 것과 다국적군사령부 협조단에 우수 자원을 파견해 줘 다국적군 업무 협조가 원활히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 깊은 감사를 표했다.
또 바그다드 다국적군사령부에서 만난 임홍재 이라크 대사는 대사관을 경비하고 있는 해병대 장병들을 보며 대한민국 국군이 얼마나 충성스럽고 자랑스러운지 모르겠다고 입이 마르게 칭찬했다.
임대사는 “해병대 장병들이 바그다드의 한국 대사관을 지키고 있는데 대사관 직원들과 한 몸이 돼 생활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품속에 ‘우리는 대사관 직원들이 적으로부터 피해를 입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방호하고, 만일 우리가 납치당할 위기에 처하면 대한민국 해병대의 명예를 걸고 자결하자!’라는 내용의 각서를 지니고 대사관을 지키고 있습니다”라며 “이런 훌륭한 장병들을 교체하지 말고 계속 근무하게 해 주십시오”라고 현지를 방문한 해병대사령관께 부탁했다.
이에 사령관은 “근무 여건이 너무 어려워 교체할 수밖에 없지만 더 훌륭한 해병들을 보내겠습니다”라고 답했다.
더욱이 자이툰부대도 함께 근무하고 있는 우리 해병들이 충성·단결·군기 등 모든 면에서 부대 내의 모델이 되고 있어 자이툰부대장은 해병대의 군인다운 모습을 전 부대원에게 심어 주기 위해 자이툰부대원들과 함께 해병대 상륙돌격형으로 머리를 깎는 삭발 투혼식을 갖고 두발 형태를 ‘자이툰형’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우리의 젊은 해병들이 해병대 정신으로 무장하고 다른 장병들의 모범이 되면서 자이툰부대의 일원으로서 항상 바르고 군기 있는 모습으로 근무하고 있는 것을 직접 확인하니 나 자신이 해병대의 일원임이 너무나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이라크에서는 대한민국의 국군 장병들이 평화·재건 활동을 전개하고 있었다.
1970∼80년대에 중동 건설 붐을 타고 오일 달러를 벌어들이기 위해 우리의 형과 아버지들이 땀 흘린 이곳에서 우리의 믿음직스러운 젊은 용사들이 목숨을 걸고 이라크의 평화·재건을 일구고 있었다.
아니, 이것은 ‘이라크 국민의 희망’을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심고 있는 것이다.
〈중령 김용일 해병대사령부〉 2004.12.21